[퇴마록]을 봤습니다.

2025. 2. 22. 01:03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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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작 소설의 대단한 팬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소설 중 하나이다. 공포영화를 아예 못 보는 내가 오컬트는 또 좋아라 하는 것은 순전히 다 이 소설 때문이다. 도서관에 살다시피 했던 중학생 시절 가장 열심히 탐독한 시리즈이다. 그땐 분명히 준후랑 엇비슷한 나이였는데... 이제는 승희를 뛰어넘어서 현암이랑 가까워지고 있다. 시간 너무 빠르다.

아무튼 이런 나이기에, 2020년 애니 제작 발표 당시부터 기대를 안 할수가 없었다. 대망의 첫 영상화가 아닌가.

실사 영화가 있지 않았냐고? 모르는 일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팬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몇몇 팬들은 아마 성불했을 것이다. 저 찬란한 박 신부님의 구마의 빛을 보십시오. 영혼이 따스해지지 않습니까?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이 벅차올랐고, 몇 번이고 울음을 참았다. 이 정도로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낀 건 옛-날에 [극장판 꼬마 마법사 레미] 봤을 때 이후로 처음인 거 같다. 간만에 '극장에서 보기 참 잘했다' 생각이 든 영화였다. 이런 기분이구나... 오랜 애정을 품어왔던 작품이 정말 훌륭하게 영화로 나오는 걸 보는 기분이...

 

 

 

일단 캐디가 아주 마음에 든다. 원작이 PC통신 시절 소설이라 시간대가 상당히 옛날인데, 이걸 적절히 현대로 땡겨왔다. 종교인인 박신부와 준후는 큰 개변은 없는데, 현암과 승희는 디자인이 굉장히 준수하다. 특히 이현암, 저 얼굴이 어떻게 서른 살이냐? 현승희가 현암군 이러면서 개기는 이유가 있었구만. 목소리도 남도형이라 굉장히 미남 미성이다. 승희 디자인도 정말정말 이쁘게 잘 나와서, 캐릭터들 비주얼로는 깔 데가 없다. 주연진뿐들 아니라 조연인 호법들도 설정과 도술에 맞는 깔끔한 디자인들로 나왔고, 악역들도 확실하게 나쁘게 생겼다.

 

 

 

전반적인 화풍이 [아케인]을 연상시키는데(특히 준후), 제작 시기를 생각하면 일부러 참고한 거같지는 않다. 충분히 독자적으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특히 연출이나 배경 묘사는 감탄스럽다. 불교 건축물이랑 탱화 그려놓은 것좀 보십시오. 정성이 철철 넘치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건 연출이 되게 영화같다는 것이다. 실사 영화에 애니 스킨 씌워놓은 것마냥 카메라 움직임이나 사람 움직임 그런 것들이 영화를 보는 거 같았다. 애니랑 영화에서 각각 장점 취한 느낌이라 제작진들이 되게 영리하게 만들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보면서 되게 좋았던 장면이다.

그냥 딱 '한국' 아닌가? 내가 지금 한국 소설 원작의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 장면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세계편에 나오는 아스타로트를 벌써?

약간 아쉬운 점을 꼽자면, 조금 장면이 휙휙 왔다갔다 하면서 중구난방 정신없다는 느낌을 살짝 받았다. 어쩔 수 없긴 한게 원작 소설은 캐릭터별로 에피소드를 배정해서 과거사를 느긋하게 풀었단 말이지? 근데 극장판 애니에선 그게 안 된다. 각 캐릭터들의 행동 동기라던가 하는 것들을 한 편 내에서 대충 알아듣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전달해야 하는 정보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랑 과거를 계속 왔다갔다 한다. 집중 못 하면 금방 슉슉 지나가버리니 주의.

그리고, 승희 분량이 정말 좁쌀만하다... 사실상 캐릭터 포스터 나온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대사도 한 두줄밖에 없고, 사실상 2편 떡밥용으로 나온 캐릭터다. 물론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게 본 극장판의 배경이 된 것은 원작의 첫 에피소드인 '하늘이 불타는 날'인데, 거기 승희 안 나온다... 나중에 합류하는 애인데 누군지 보여는 줘야 하니까 영화에 낑겨준 거다. 그래도 쿠키 영상으로 다음 편(이 만약 나온다면) 주연을 예약했으니 훗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현화백 에피소드도 재밌었어서 기대된다.

외에도 뜬금없이 아스타로트가 등장하는 등 약간씩 원작과 달라진 부분들이 있다. 각본 자체를 원작자 이우혁 작가가 썼기 때문에 그런 변경점들이 별로 어색하진 않았다.

 

 

 

표지사기...

결론적으로,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이건 퇴마록 팬이어도, 퇴마록 팬이 아니어도 충분히 좋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12세 관람가라 표현 수위가 그닥 빡세지 않다. ...진짜 12세들이 어떻게 볼진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작품이 잘 되어서 좀 더 이렇게 한국 애니메이션의 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한국 제작진들 충분히 역량 있는 분들이십니다. 이렇게 결과로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응원과 관람 부탁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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