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의 비극>을 읽었습니다.

2024. 2. 25. 21:25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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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말하는 '세계 3대 추리소설(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는데)'에 꼭 들어가는 명작으로 이미 소문이 자자한 소설이다. 처음 이 소설을 발견한 건 중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였는데, 그때 나는 셜로키언에 일본 추리소설 매니아였지만 이건 읽지 않았었다. 애거서 크리스티도 곧잘 읽었는데 왜 얘만 쏙 빼먹었을까나....
여하튼 그랬는데 몇 주 전 강남 교보문고에서 발견하게 되었고, 드디어 읽을 마음이 생겨서 집어왔다.
 
다 읽은 감상은, '고전명작은 괜히 고전명작이 아니다'라는 것.
숱한 오마주와 재사용으로 익숙함에 빛이 다소 바랠 수는 있겠으나, 진정으로 찬란함을 잃을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힌다.
 
무엇보다, 요즘 이런 소설 없다.
이 소설은 화려한 필력도, 자극적인 전개도, 뒤통수 후리는 반전도, 예상 못한 갑툭튀도, 미지의 영역도, 현란한 서술 트릭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차근차근 사건을 전개하고, 차근차근 단서를 흩뿌리고, 독자를 차근차근 끌어들인다. 여기에 어떤 양념도 치지 않고 매우 담백하게 극을 이끌어나간다.
쉽게 말해서, 이 소설은 '잔재주 따위 없는 독자와의 정면승부'다. 상황, 증언, 장소, 단서 등등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단서를, 등장 탐정과 독자에게 동등하게 제공한다. 탐정이나 독자의 시야 밖에서 핵심적인 사건이 진행된다거나, 흑막의 심리나 행동을 묘사한다거나 하는 것은 일절 없다. 탐정은 모든 증언과 단서를 파악하고 있고, 독자도 똑같다. 독자는 탐정과 똑같은 재료를 통해서 사건을 추리해나갈 수 있다.
실제로, 나는 그다지 머리가 영리한 편이 아니지만,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어떤 단서를 통해서 '어라?'하고 범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 머리 좋은 사람이라면 그보다 더 일찍 눈치를 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탐정이 범인을 해설해 줄 때에는, 작가가 글로써 적어낸, 탐정이 수사해 참여해 알아낸, 독자가 읽어왔던 그 내용들을 오롯이 이용해서 해설을 해준다. 해설의 재료에 '독자가 몰랐었던 정보' 같은 건 없다. 모든 건 우리에게 주어졌다. 아주 공평하게.
그래서 이 소설은 무척 담백하고 또한 정교하다. 그야 말로 기본 중의 기본, 정도 중의 정도, 정통 중의 정통이다. '추리소설의 스탠다드'라고 할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 게다. 
 
또한, 약간의 반전 요소 또한 포함하고 있다.
'담백하다면서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건 범인의 정체 때문이다. 추리를 해냈어도 '이게 맞나?' 싶을 것이다. 심플하게 생각해보면 약간 생뚱맞은 정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중에서 탐정도 그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설명을 들으면 납득이 가긴 한다. 다소 소름이 돋기도 하고. 아마 이 소설이 처음 출판된 1940년대 기준으로 보면 대단히 충격적인 정체였을 수도 있겠다. 요새는 이런 게 종종 있긴 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현대 추리물에서 '~~~~'가 범인 혹은 협력자일 경우, 아마 십중팔구 이 소설이 그 뿌리일 것이다. 나도 비슷한 거 몇 개 보기도 했고.
 
약간 아쉬운 것은 뒷맛이 찝찝한 엔딩 정도?
이게 범인의 정체와 동기를 생각하면, 그리고 범인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고 있으면 안 찝찝할 수가 없다. 열린 결말식으로 처리한 것을 보면 노린 거 같기도 하고. 덕분에 한 인간으로서 탐정의 고뇌가 참.... 느껴진다....
 
 
 
정리하자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교과서적인 추리소설이다. 취향에 안 맞을 수도 있는데, 이런 건 취향 상관없이 걍 읽는 게 좋다. '나도 범인 한 번 맞춰보고 싶다'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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