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에 이르는 병>을 읽었습니다.

2023. 4. 25. 19:15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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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골 때린다....

 

미리 말하자면, 이 책은 대단히 불쾌하고 역겨운 책이다.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소설이니 당연히 살인 장면이 나오지만, 문제는 그 디테일이다. 범인의 심리나 범죄 행각의 과정 등을 제법 세세하게 설명하는 데다가, 그 내용이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상당한 각오를 하고 읽어야 한다. 고어소설로 취급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대단히 잔인하다. 뭐 막 쏘우마냥 토막 내고 갈아버리고 그런 정도는 아니긴 한데.... 비슷한 건 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보다 더 역겹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 글 내용을 머릿속으로 실감나게 상상하면서 읽는 편인데, 이 소설을 읽을 때에는 최대한 그런 상상력 머신을 가동중지한 상태로 읽어야 했다. '잘도 이걸 정발했구나' 싶을 정도의 소설이었다 정말로.

 

그리고 그런 불쾌함과 역겨움의 벽을 겨우겨우 넘어, 마지막 장에 다다르는 순간. 이 소설은 그야말로 독자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긴다. '어? ....어?!?!?!?!'로는 부족한, 내 눈을 의심하고 지금까지 읽어왔던 이 소설의 내용을 의심하게 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무지하게 잔인한 반전 소설'로 알고 접했기 때문에, 반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애초에 띠지에서도 반전을 강조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반전은 아닐까 하고 처음에는 머리를 요리조리 굴려봤는데, 웬걸 전혀 상상도 못 한 반전을, 마지막 한 장에 아주 짧고 강렬하게 마련해두었다.

 

특히 대단한 것은, 이 반전을 예측하기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허를 찌르는 것'이 반전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정말 제대로 찔렀다.

아주 모범적으로 잘 쓴 서술 트릭을 보여주고, 그 트릭을 작가의 흡입력 있는 필력과 힘 있는 전개로 잘 감춘다. 그러면서도 은근하게 복선을 뿌리기도 한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몇몇 떡밥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읽는 과정에선 그러한 복선들을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후반부에 전개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에는 노골적으로 복선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들의 발걸음이 얼키고 설키는 긴장감 있고 복잡한 전개가 역시 그것을 감춘다. 실로 노련한 솜씨고, 통쾌하게 한 방 먹었다. 반전 소설로의 가치는 정말 굉장히 높다.

 

....다만, 마지막 한 방의 반전을 얻어맞기 위해, 이 잔혹하기 짝이 없는 내용을 견뎌내는 것은 좀 많이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나는 평소에 고어영화 즐기니까 괜찮아!'라는 분들에겐 말리진 않겠다. 하지만 이 소설은 잔인한 것도 잔인한 건데, 기분이 나쁘다. 범인의 입장에서 쓰여진 부분이 가장 분량도 많고 생생하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아무튼 읽는 데에 상당한 각오를 요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종합하자면, '대단하지만 추천하기는 어려운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디 음지에서 발매하는 소설도 아니고 상업적으로 발매한 데에다 해외에 번역까지 된 소설이 이런 묘사를 한다는 게 여러 의미로 대단하긴 하다....

 

 

 

참, 이 소설을 추리소설로 분류하던데,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범인이 처음부터 밝혀진 채로 시작하는 데다가, 상기했듯 범인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뭘 추리하는 내용이라고 하기가 애매하다. 물론 독자가 범인을 아는 거지 형사 쪽 입장은 다르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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