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를 읽었습니다.

2021. 9. 20. 16:09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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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영화 포스터를 표지에 사용하고 있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원래는 이걸 볼 생각이 없었다.
근데 서점(책방)에 갔더니, 내 생각보다 이 녀석의 두께가 얇았었고, '이거라면 금방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집어왔다. 그리고, 다 보고 난 후에는 그 생각을 약간 후회했다.

일단 수위가 되게 세다. 주인공 알렉스의 인성이 개차반인 것도 있지만, 살인, 폭행, 강도, 강간 등 심각한 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초반부는 가히.... 감탄스럽다. 이거 영화도 있다던데, 그건 못 볼 거 같다. 글로만 봐도 꺼림칙한데 실사로 본다니 나로선 못 할 짓이다.
아무튼, 이런 망나니가 망나니짓을 하다가 체포되어 교도소에서 썩는데, 14년 형을 2년만에 나가게 해주는 대신 인체실험을 받게 된다. '루드비코 실험'이라는 것으로, 온갖 잔혹한 영화들을 보여주면서 약물을 통해 뇌에 각인시키고, 그 영화와 비슷한 나쁜 짓을 하려고 할 때,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파블로프의 개 인간 버전이다. 아무튼 알렉스는 이 실험을 받고, 범죄 행위에 강제적인 거부감을 갖게 된 사람이 되어서 풀려나게 된다.



제목인 시계태엽 오렌지는, 본작에 등장하는 한 작가가 쓰는 소설의 제목이다. 그 소설의 내용 중 일부는 이렇다.

인간, 즉 성장하고 다정할 수 있는 피조물에게 기계나 만드는 것에 적합한 법과 조건들을 강요하려는 시도나 또 수염이 난 신의 입술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려는 시도, 여기에 대항하여 나는 나의 칼, 펜을 든다.


즉 이게 작가가 말하려는 요점이다.
'인간의 천성, 자유의지를 제도적 혹은 기술적인 방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가.'

매우 간단하고, 현대 사회나 요즘 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주제다.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부 혹은 권력. [캡틴 아메리카: 원터 솔져]에서 캡틴이 수호하고자 한 것 또한 이것이다. [매트릭스]도 그랬고. 자아에 대한 열띤 고민을 하는 SF물들은 보통 이 주제를 많이 사용한다. 그리고 대개는 '강제해선 안 된다'라는 쪽이고, 인간의 의지와 자유, 신념 등을 찬양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보다 보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분명히 자유란 숭고한 것이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알렉스는 얘를 사람 취급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쓰레기인 것이다. 이런 쓰레기를, 다소 과격하지만 루드비코 같은 요법을 이용해서 강제적으로라도 교화할 수 있다면,
그동안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숱한 범죄자들에게 루드비코 요법을 시행한다면, 혹은 미리 했더라면.
그런 점을 생각하면 또 고민이 든다.
또한, 이 시국에 마스크도 제대로 안 하고 단체로 몰려다니는 일부 몰상식한 인간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로 통제보다 자유가 중요한가 고민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뭐 통제vs자유는 현재도 실시간으로 사골이 쥐어짜여지고 있는 오래되고도 꾸준한 소재니,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수많은 상황은 우리를 어느 한 쪽 편을 들게 하겠지만, 그곳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지도 않으니까.

그럼 이 소설은 어느 쪽 편을 들고 있느냐.
하면 '인간의 자유의지'의 편을 들고 있다. 다만, 누구보다 그 자유의지를 옹호하던 소설 속 <시계태엽 오렌지>의 작가가, 알렉스의 정체를 알고 길길이 날뛰는 장면은 또다른 의미를 준다. 또한 알렉스가 자살에 실패하고 병원에서 깨어난 후반부 장면에서, 의사들은 루드비코 요법을 치료했다고 말한다. 그 증거로 알렉스는 문답을 통해 되살아난 폭력성을 친절히 확인해 준다. 다행히 엔딩은 알렉스가 철이 들고 어른이 되는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하지만, 어딘가 찝찝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개를 되짚어 보면, 의사와 루드비코 요법으로 인해, 폭력성이라는 자유의지를 억압당한 알렉스는, 다시 다른 의사들에 의해 그 폭력성을 되찾는다. 의사들의 그런 행위를 정부나 권력의 통제에 빗댄다면,
제도는 폭력을 억압했고, 다시 용인했고, 그렇게 용인된 폭력은 형태를 바꾸어 좀 더 길고 깊게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래에 알렉스가 어떻게 살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과연 지금의 짓거리를 완전히 떨쳐낼 지 의문이다. 알렉스의 졸개였던 딤은 경찰이 되었지만, 알렉스를 만나자 그를 신나게 고문했잖아?

한 마디로 이 소설은, 직관적이면서 복잡하다. 말하려는 게 뭔지는 알겠는데, 그게 그리 쉽게 결론 나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도 알고 작가도 안다. 그래서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하다. 민음사판의 뒷표지는 "폭력과 죄악에 대한 성찰 속에서 국가권력의 억압을 비판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는 작품" 이라고 적어놓긴 했다만.... 그게 다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게 다가 아니도록 세상이 만들고 있고.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1960년대 작품인 걸 생각하면 더더욱. 역시 시대와 상관없이 고찰할 수 있는 주제는 매력적인 것이다. 재미만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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