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를 읽었습니다.

2022. 1. 16. 00:23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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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와서야 '시선'이 의미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깨달은 나는 도대체 얼마나 돌대가리인가....

나는 目線인 줄 알고 샀고(책을 들춰보지 않은 모든 사람들도 아마 같은 생각으로 집어 들었을 것이지만), 책 속에 그러한 내용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어쨌든 '심시선 작가'의 이야기에 근간을 두고 있는 내용이다. 이걸 책 말미에 '시선으로부터'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할 때까지, 숱하게 심시선이라는 이름을 접하는 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이렇게 없을 수가....

 

 

 

이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인터넷에 떠도는 한 구절이 계기였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정확히 언제 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마는, 아마 박원순 시장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많이 나돌았던 것 같다. 딱 알맞은 문장이기도 해서 뇌리에 남아 있었는데, 최근 서점에서 발견해서 사 오게 되었다.

 

직접 읽어보니, 저 문장은 이 소설의 아주 일부분이었다. 이 소설은, 저 문장과 제목만으로는 유추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내용이 무척이나 다채로웠다.

 

일단 등장인물들이 많다. 가장 중심이 되는 심시선이라는 인물을 시작으로, 이명혜, 김난정, 홍경아, 박화수, 박지수, 이우윤, 정규림, 정혜림 등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챕터마다 중심인물들이 휙휙 바뀌어서 다소 어지러울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군상극을 좋아해서 이 점도 마음에 들었다.

무대는 하와이로, 심시선의 10주기를 맞아 딸과 손녀들을 비롯한 온 가족이 첫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과 그들의 속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부터 이미 기막힘을 느꼈다. '제사'를 '하와이'에서 지낸다니. 게다가 뒤에 밝혀진 그 '제사'의 방법 또한 범상치 않았다. 색다른 동시에 따스했다. 먼저 간 이를 기리고 기억하는 의미에서 오히려 현재 통용되는 제사의 방법보다 더 좋다는 느낌도 들었다. 여러 모로 감탄스러운 상상력이었다. 역시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자님....

하와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여러 모로 아기자기하다. 떼어놓고 보면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들 같다. 그리고 그 아기자기함 속에 은근한 성찰을 묻어놓았다. 그래서 아기자기함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반짝임 들은 인물의 속내와 결합해 좀 더 깊고 단단한 이야기가 되어서 머리에 남는다. 허투루 쓰이는 사람도 없고, 허투루 쓰이는 이야기도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이 대가족의 움직임에 오롯이 함께 할 수 있었다.

 

또 하나 특이했던 것은, 각 챕터의 시작 부분에는 항상 심 시선의 책 내용 일부를 싣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심시선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처럼. 제목과 연도, 출연한 방송까지 곁들여서. 그만큼 이 소설에서 심시선이라는 사람은 중요하다. 그 영향은 그의 자손들에게도 뚜렷하게 미쳐지고 있다. 책 뒤에 있는 김보라 감독의 추천사가 참 적절하게 이들을 표현하고 있다.

기 센 여자들이 아닌 '기세 좋은 여자들'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않은 여성이 가장이 될 때, 가족들이 어떠한 결을 갖고 살아갈지에 대한 기분 좋은 전망

 

다만 박화수의 사건을 통해, 특별하지 않은, 너무나 일상적인 한국 사회의 모습 또한 보여주고 있다. 이명혜와 홍경아의 사업 이야기도 그렇고. 그런 점들은 이들이 지금 우리와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감을 강조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 현실감 때문일까, 묘하게 이 소설을 덮고 나서도 무언가 희한한 기분이 느껴진다. 분명 끝이지만 끝이 아닌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어딘가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넘쳐나는 생동감은 끝도 끝으로 만들지 않고 있다. 참 대단한 소설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 소설을 읽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인데, 참 좋은 소설을 잡게 된 것 같다.

 

그리고, 후일담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지수와 체이스의 기름 청소 대작전을 다뤄주시면 어떨지 작가님께 간청드리고 싶다. 하와이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궁금하고....

 

 

 

 

 

그리고,

다른 거 다 멀쩡한데 왜 이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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