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우스]를 봤습니다.

2022. 3. 31. 21:12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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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베놈]보단 재밌다.
근데 뭐 뒤집어지게 끝내주는 영화가 나왔다... 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무난무난하게 잘 만들었다?


하야쿠우우우우우!!!!

일단 영화가 많이 급하다. 뭐에 쫓기는 것처럼 엄청 빠르게 빠르게 내용을 전개한다. 물론 러닝타임이 104분짜리니까 다소 달려야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뭐 질질 끄는 게 없어서 좋긴 했다만, 어째 소니 마블 영화들은 차분함의 미덕을 모르는 녀석들이 만드는 건가 싶다.


나는 예고편을 봤을 땐 '의술로 병을 치료 못하니까 무슨 주술적인 힘을 빌리는 건가?' 싶었는데, 의외로 착실하게 과학의 힘을 이용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에 나온 악당 리저드가, 좋은 환경에서 연구하면서 선한 마음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이런 캐릭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치유하기 위해 동물에서 아이디어를 가지고 온 점, 자신에게 실험을 하여 슈퍼파워를 갖게 된 점, 힘을 제어하지 못해 처음에 마구 날뛴 점 등 공통점이 있다.
근데 박쥐와의 DNA 결합을 통해서 뱀파이어의 힘을 얻다니, 이거야말로 진짜 배트맨 아닌가? 거미에 물려서 힘을 얻은 스파이더맨처럼....
엄밀히 따지면 DC의 브루스 웨인 배트맨은 박쥐 코스프레지. 이쪽이야말로 박쥐의 힘을 이용하는 트루 배트맨이 아닌가....


액션 연출은 제법 봐줄 만했다. 음파 탐지 능력을 사용하는 장면, 오만 군데를 싸돌아다니면서 싸우는 장면 등 전개의 속도감에 걸맞는 스피디한 싸움 장면들은 비주얼적으로 꽤 괜찮았다. 특히 마지막 전투에서 흡혈박쥐들이 어셈블 하는 장면은 포스가 느껴져서 좋았다.
문제는 그 하이라이트 전투가 잘 안 보였다는 것. 예산 떨어지는 영화들마냥 자꾸 밤에 시커먼 곳에서 쌈박질을 해댄다. 처음 배에서의 전투(위 스틸컷)도 그랬고. 뱀파이어라는 캐릭터 특성을 살리고자 한 선택이라면 뭐 그렇다 하겠는데, 관객한테 보여질 영화라면 일단 액션신을 좀 잘 보이게 해주면 안 되냐....


시꺼매가지고 하나도 안 보이는데 딱히 명품도 아님

특히 본작의 뱀파이어 모드 마이클과 마일로는 그 기괴함과 살벌함이 잘 살아있는 디자인이라, 뱀파이어물 좋아하는 나한테는 되게 만족스러운 비주얼이었는데, 이게 하이라이트 전투씬에서 잘 드러나지가 않으니까.... 많이 답답했다. 하악질하는 것도 포효하는 것도 좋지만, 니들의 그 살벌한 와꾸를 보면서 액션신을 감상하고 싶다고 나는....


메인 빌런인 록시아스 크라운 a.k.a. 마일로. 이 친구도 문제가 많다.
배우의 연기는 훌륭하고, 단순한 악당이라 할 수 없는 복잡한 캐릭터성을 지닌 인물이라 나름의 매력도 존재한다. 문제는 상기한 전개 속도 문제에 맞물려, 그 캐릭터성을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것.
같은 병원 출신으로 마이클 모비우스는 의사가 되었고, 마일로는 부자가 되어서 모비우스를 후원하는데, 얘가 어떤 경로로 부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다. 도시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잡은 대형 병원의 초 유명 의사를 후원하는데 작중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괴상하지 않은가. 물론 모비우스의 질병 치료 실험 관련해서만 후원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얘가 뭘 하는 애인지는 좀 알려줘야 하지 않나? '부자'라는 것도 실험 후원과 으리으리한 집 정도가 아니면 잘 티가 나지도 않고....
또 후반부에 스승인 니콜라스 상대로 분노할 때 모비우스에 대한 열등감을 표출하는데, 그전까지는 그런 열등감을 느낀다는 묘사가 전혀 없었어서 굉장히 어색했다. 이후에도 그 열등감을 가지고 뭘 하지도 않고.... 왜 넣은 거야?
니콜라스도 마찬가지인데, 평생을 마일로에게 헌신했다고는 하지만, 그와 어떤 관계를 쌓아왔는지 보여준 게 하나도 없으니 헌신이란 단어에 설득력이 없었고, 마찬가지로 마일로의 분노에도 설득력이 없었다.

한마디로,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들의 설정들이 너무 없다. 흔히 말하는 '설정 구멍'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설정의 총량 자체가 부족하다. 뭘 좀 보여줘야 관객들이 캐릭터를 이해하지.... 연차 쌓인 캐릭터도 아니고 이제 데뷔하는 건데 왜 숨기려 들어?



그리고, 문제의 쿠키 영상.
솔직히 뇌절이다. 왜 거기서 모비우스가 재미를 느끼는지 알 수가 없고, 벌처는 어디서 슈트 재료를 줏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이런 식의 차원 이동이 가능한 건지, MCU랑 설정 합의가 된 건지도 의문이다. 안 그래도 스피드 조절 실패한 영화인데 쿠키마저 이래버리니....
뭐 시니스터 식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건 잘 알겠는데, 너무 급해 니네. 급하다고. 개별 작품들의 퀄리티가 다 불안정한데 왜 자꾸 팀업 욕심 내.




결론적으로, 그냥 머리 비우고 보면 좋은 영화다.
일단 '에디 네가 날 바꿨다' 이딴 말 같지도 않은 대사가 튀어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베놈]보다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냥 거기까지다. 스토리는 좀 더 짜임새가 좋지만, '안티 히어로'라는 캐릭터성을 잘 표현해낸 거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빌런으로서 임팩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영 애매하다. 중간 정도까지는 나름 괜찮게 서사를 쌓아갔는데 후반부 가면서 구멍이 숭숭 뚫리는 것도 마이너스 포인트.
이런 만들다 만 것같은 점들 때문에, 그냥 술 한 잔 하면서 시간 때울 겸 보면 아마 제일 베스트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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