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봤습니다.

2022. 5. 5. 14:51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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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뻥이다.




1줄로 요약하자면 그거다.
샘 레이미가 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일단 이 영화는 명명백백히 호러 영화다.
끔살당하는 캐릭터들, 슬래셔 무비 속 살인마를 연상케 하는 추격씬, 틈 날 때마다 등장하는 점프 스퀘어에 사람 애간장을 다 졸이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까지....

이건 절대로, 절대로 12세 관람가가 아니며, 어린이날 시즌에 개봉되어서는 안 되는 영화다. 대체 어떤 또라이가 등급 책정을 이렇게 한 거야? 평소 마블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이건 [판의 미로]급의 뒤통수다.

물론 샘 레이미 감독의 호러 연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척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이블 데드]의 자체 오마주를 한가득 때려부은 데다가, 클래식한 호러 연출들도 등장하기 때문에 공포영화 팬들이라면 마블 영화의 색다른 맛을 즐길 수도 있을 것.
물론 난 아니었다. 나는 [디 아더스]도 벌벌 떨면서 보는 사람이란 말이야.... 진짜 완다와의 전투씬은 내가 다 괴로웠다.




제목은 [닥터 스트레인지]지만, 사실상 닥스와 완다의 더블 주인공 체제이다. 특히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것은 완다로, 결국 모든 일이 완다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전부 아가사가 아니라 전부 완다이다. 이상한 박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상한 완다의 이야기이며, 광기에 휩싸인 것도 혼돈에 빠진 것도 모두 완다이다.


완다는 MCU에서 가장 개같이 구른 캐릭터이다.
어릴 때 두 부모님을 모두 여의었고,
울트론과의 전투에서 하나밖에 없는 친오빠를 여의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본인 손으로 죽일 수밖에 없는 선택을 했지만, 그조차도 무로 되돌아가더니 자기 눈앞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했고,
거짓된 행복의 세계는 결국 해체되어, 잠시나마 가졌던 가족의 행복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진짜 '이렇게까지 괴롭혀야만 속이 후련했냐!'며 제작진들에게 묻고 싶을 정도로, 한없이 처절한 삶을 살아온 캐릭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아이들을 향한 집착은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완다비전을 본 사람이라면 정말 잘 이해될 것이고, 보지 않았더라도 엘리자베스 올슨의 뛰어난 연기력이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더해준다.

문제는 방법이다. '아이들에게 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들은 다 죽여버리겠다'는, 말도 안 되게 극단적인 방법.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집착에 눈이 뒤집어졌고, 다크 홀드의 힘에 홀렸다는 나름의 이유는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너무 막가파다. 본작의 스칼렛 위치는 '악'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몇 명을 죽이든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사악한 마녀 그 자체다. 완다를 향한 호크아이와 모니카 램보의 믿음은 사실상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 최후의 최후에 겨우겨우 반성하지만 때는 늦었다.

분명 [완다비전]에는 자신이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 대한 죄의식이 있었고, 영화 초반에도 '내 실수로 많은 이들이 다쳤다'는 대사를 치지만, 이후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몰살한다. 문자 그대로 광기에 휩싸인 모습이다. 다크 홀드의 세뇌 탓이라고 해도 너무 과하다....

이 부분이 이 영화 최대의 단점 중 하나이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어?'라는 것. 이 지점 때문에 섣불리 동정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또다른 단점과도 연결된다. '불필요하게 많은 이들이 불필요하게 잔인하게 죽었다'라는 것. 완다의 폭주와 그에 따른 잔학성을 보여주기 위해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다. 엑스트라 마법사들을 포함해 일루미나티까지. 상기했지만 이거 12세다. 이게 12세에서 할 짓거리들이 전혀 아닌데....




본인 이름이 걸린 영화에서 줘털리는 역할을 담당한 닥터 스트레인지.
최강자로 거듭난 스칼렛 위치에게 쪽도 못 쓰고 후드려맞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특히 본작은 전작보다 마법 연출이 좀 많이 심심한데, 그 점이 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차라리 화려한 볼거리라도 제공했으면 좀 덜 아쉬웠을 텐데, CG만 좋지 이 양반이 뭘 보여주는 건 많지 않다.
그래도 본인이 마음 속에 쌓아두고 있던 걸림돌과 두려움을 털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으니 그 점에서는 나름의 성장 서사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으려나?




본작의 감초 아메리카 차베즈.
어떻게 사람 이름이 아메리카지.... 우리나라로 치면 김미국 이영국 박호주 뭐 이런 거잖아.

본작에서 차베즈의 주요 역할은 멀티버스 포탈을 여는 것과, 붙잡힌 히로인. 샘 감독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본 사람이라면, '민폐 안 끼치는 메리 제인'이라 생각하면 된다. 악당의 타깃이자 스토리의 키포인트로 작중 내내 쫒기지만, 딱히 트롤링으로 속 긁는 것도 없고, 마지막에 성장해서 능력을 개방하기도 하고, 제법 괜찮았다. 배우가 이게 데뷔작인데 연기가 깔끔하기도 했고, 비명 소리도 찰졌다.
다만 캐릭터를 좀 더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는 분량이 많지 않은 건 아쉬웠다. 물론 이 영화 주인공은 닥스와 완다고, 조연인 이 친구에게 많은 서사가 할애되는 것도 좀 거시기하지만. 애초에 배우도 캐릭터도 아직 어리고(06년생이다), 매력은 잘 보여줬으니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된다. 써먹기 편한 캐릭터이기도 하고 엄마들 떡밥도 남아있고.




일단 기대했던 만큼의 퀄리티는 아니었다. 막가파식으로 폭주하는 완다가 제일 문제였고, 거기에 너무 많은 것들이 휩쓸렸다. 제작 스케줄을 생각하면, 샘 레이미 감독은 [완다비전]을 촬영 중후반부에야 감상할 수 있었을 테니 그 점은 감안해야 겠지만....
특히 거의 버림패로 활용된 일루미나티가 아쉬움을 더한다. 멀티버스를 다루는 이상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는 하지만, 캡틴 카터, 블랙 볼트, 리드 리처즈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라....

[노웨이홈]이 너무 깔끔하게 잘 나온 영화라, 더 아쉬움이 짙어지는 것도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힐 대형 이벤트로서는 역할을 잘 해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개별 영화로서의 완성도를 놓고 본다면 다소 미흡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보는 게 내가 보기엔 맞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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