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14. 15:31ㆍ본 영화
완성도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냥 무난하다 정도? 시리즈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에는 아슬아슬하게 성공한 것 같다.
다만 이 시리즈가 전체적인 완성도가 좋지 않기 때문에, '무난하다'는 결코 이 시리즈 영화에게 칭찬이 되지 않는다....
영화 시작부터 보여주는 것은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대담, 그리고 마법 생물들을 이용해 위기를 탈출하는 뉴트. 시작 시퀀스를 통해서 제목을 충실하게 이행한다. 2편인 [그린델왈드의 범죄]가 신비한 동물들 이야기를 거의 뒷전으로 보내다시피 했다는 걸 생각하면 나름 인상적인 오프닝이었다.
본 영화의 키 포인트는 '신비한 동물들'이다. 이제는 뉴트의 명조수가 된 보우트러클 '피켓'과 니플러 '테디'가 전반에 나서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생물은 기린(다만 굳이 기린이어야 했던 이유는 잘 모르겠다. 개봉 전에는 이번 무대가 브라질이라고 입을 털더니 까보니까 독일이랑 부탄이었지. 지난 작품부터 자꾸 '신비로운 오리엔탈 감성'을 끼워넣으려고 하는데 솔직히 구질구질하다), 감옥에 출현하는 이름 까먹은 생물 등, 2편보다는 훨씬 신비한 동물들이 부각된다. 원래 이 시리즈 주인공들인데 이런 대접에 일희일비를 해야 한다니 참....
본 시리즈의 또다른 주인공 사이드,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 쪽은 여전히 애매했다.
전편에 피의 서약이 담긴 펜던트를 손에 넣은 덤블도어. 이제는 좀 더 전면에서 활동하면서 그린델왈드와 맞서나 싶었는데, 여전히 자신의 조력자들을 내세우고 자신은 배후에서 돕는 정도로 움직인다.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될 것처럼 느껴졌던 전작의 엔딩을 생각하면 영 싱겁다.
그린델왈드는 조니 뎁의 패소로 인해 배우가 매즈 미켈슨으로 바뀌었다. 디자인은 제법 괜찮았다. 조니 뎁의 그린델왈드가 사악하고도 신비로운 느낌이었다면, 매즈 미켈슨의 그린델왈드는 좀 더 시커멓고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있으면서, 진심으로 덤블도어를 사랑할 것만 같은 생김새.
다만 그거랑 별개로 캐릭터 자체에 구멍이 좀 많다. 순혈을 특별 대우하며 혼혈이나 머글 마법사를 배척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혈통에 상관없이 '마법사'를 우대하고 '머글'을 혐오하는 그의 사상과 반대되는 모습이다. 또한 세상을 뒤집을 거대한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았더니 그 방법이 고작 선거였다는 점에서 김이 푸시식 빠지는 면도 있다. 게다가 그 선거라는 것도 강력한 힘과 카리스마로 대중을 선동하는 게 아니라 기린을 통한 주작질.... 분명 추종자들이 엄청 많은데 그 자들만 이용해도 충분하지 않겠나? 굳이 쐐기를 박겠다고 굉장히 찌질한 계책을 꾸몄다. 이쯤 되면 1, 2편의 그린델왈드랑은 그냥 다른 캐릭터라고 봐야 할 정도.
딱히 배우의 잘못은 아니다. 캐릭터 연구에 미진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전에 각본 문제가 크다. 애초에 조앤 롤링은 전문 영화 각본가가 아닌데 왜 자꾸 본인이 나서는 건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본인이 손이랑 입으로 수없이 똥을 싸질러서 이미지도 나빠졌는데 왜 자꾸....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은 다들 제법 괜찮았다. 랠리 힉스는 뛰어난 연기력과 마법 실력으로 눈을 사로잡았고(특히 주위 사물을 이용해 적을 제압하는 기술과, 책 포트키를 이용한 마법은 아주 멋졌다), 번티는 분량은 적었지만 마지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줬다. 전 독일 마법부 장관인 보겔은 그 자체는 삼류 악당 수준이지만, 배우의 억양과 좋은 연기력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린델왈드의 캐릭터 모티브 일부가 히틀러에게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본작에서 보겔이 한 선택은 마치 현실을 반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근데 이 동네 정치인들은 다들 바보들인가? 분명 영화 초반까지도 국제적인 범죄자이자 테러리스트였던 작자가, 신비한 생물인 기린에게 절 받았으니까 귀인이다? 그걸 보는 방청객들은 아하 그렇구나 하고 한방에 납득한다? 근데 알고 보니 그게 시체 조종술이었고 찐 기린이 다른 후보에게 절하니까 또 오호라 하고 이제 그린델왈드에게 지팡이를 겨눈다?
이 영화에서 얼척 없는 장면들이 많았지만, 단연코 마지막 기린 선거가 원탑이었다....
번티의 가방 복제도 할 말이 많은데, 일단 그 씬 자체가 불필요하다. 마법 가방의 외관만 복제하면 되는 건데 굳이 머글 가게 가서 쩔쩔맬 필요가 있나? 하다 못해 [혼혈 왕자]의 해리조차 디핀도와 디센도로 마법약 교과서의 외관을 복제해냈는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씬이었다.
복제 가방으로 악당들을 혼란시킨다는 전략은 말은 좋지만, 그러면 악당들이 "뭐야, 어느 게 진짜야?"라던가, "하나하나 확인하는 수밖에!", "이건 가짜야! 쳇, 저게 진짜구나!"같은, 최소한의 양념 대사들을 쳐줘야 하는 게 예의 아닌가? 물론 낡은 대사들이긴 하지만, 애초에 그러면 낡은 전법을 쓰면 안 되지....
이 두 캐릭터는 특히 문제가 많다.
둘 다 선역으로 돌아가게 되는 계기와 과정이 부실하다. 퀴니는 제이콥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하지만(그렇다고 해도 부실하긴 하다. 국제적인 범죄자에게 동조했는데 이런 결말이 맞는지....), 크레덴스는 이번에도 캐릭터가 불친절하다. 전작의 엔딩에서는 그린델왈드에게 완전히 매료된 모습을 보였었는데, 이번엔 시작부터 다소 어색해하고 두려워하는 눈빛을 보인다. 도대체 롤링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인지, 2편과 3편 사이에 무슨 거대한 차원의 벽이라도 있는 것같다.
일단 크레덴스의 출생의 비밀은 밝혀졌는데, 솔직히 이게 약간 뜬금없다. 가능한 시나리오 중에서 그래도 제법 합리적인 결론이긴 하지만, 딱히 복선 뿌려둔 것도 없었고, 마치 비밀스런 한 방을 날리는 것처럼 전작 엔딩에서 따당 하고 밝혔던 것치곤 좀 싱겁다. 몇 번씩 말하지만, 이전에 뿌려둔 복선 중에서 이번 작을 통해 상당히 싱겁게 풀어져버린 게 한 둘이 아니다.
그래도 아예 미친 캐릭터처럼 보였던 퀴니가 이번 작에서 좀 인간성을 회복한 모습을 보인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래도 이건 좀 웃겼다. 필사적으로 양팔을 들고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드는 게 영락없는 제로투....
신비한 동물들의 매력이 전작보다 잘 보여졌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인간 쪽 서사의 괴멸로 인해서 이 영화는 또다시 폭삭 주저앉을 뻔했다. 전작의 가장 큰 문제점은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이야기가 중구난방이다'였는데, 이번에는 내기니와 티나 등의 캐릭터를 쳐내고, 힉스, 번티, 유서프에게 별다른 분량 없이 적당한 활약만 하게 했음에도 이 꼴이 났다. 역시 조앤 롤링이 펜을 내려놓는 게 정답이 아닌 가 싶다.
감독이요? 그래도 이 양반은 [죽음의 성물]까진 잘 했어.... 그리고 원작자가 직접 각본을 짜는 판국에서 캐릭터성 문제에 대한 책임은 역시 롤링에게 가하는 게 맞다고 본다. 난 예이츠의 마법 연출 좋아하기도 하고.
다만 그 마법 연출의 하이라이트가 되었어야 할 덤블도어vs그린델왈드의 대결이 꼴랑 1분 가량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욕을 해야겠다. 쓸데없는 가방 복제 씬 같은 거 쳐냈으면 훨씬 안정적으로 분량을 확보했을 텐데....
여하튼, 이 시리즈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조니 뎁을 하차시키는 용단을 발휘했으니, 다음은 롤링을 뒷전으로 보낼 차례가 어떤가 싶다. 아님 예이츠를 보내던가. 둘 다 싫으면 시리즈를 리부트하던가. 내가 보기에 워너와 위자딩 월드에게 남은 선택지는 이 셋이 전부다. 이대로 강행하면 그 앞은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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