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봤습니다.

2021. 12. 20. 16:47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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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영화다....



사실상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MCU 스파이더맨 뿐만 아니라 제대로 끝맺지 못하고 정리되어버린 샘스파와 어스파에 대해서도 멋진 후일담과 마침표를 찍어주는 마무리 영화이며, 이전까지 개봉되었던 [홈커밍]과 [파프롬홈]에서 느꼈던 아쉬움까지 만회시켜주며, 지난 시간동안 개봉되었던 모든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봐오고 사랑해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해 할 만한, 팬서비스의 결정체와도 같다.


스틸컷이 적게 풀린 것은 아쉽지만, 이 이상 풀면 뭘 어떻게 해도 스포일러가 되어버릴 테니 나름 옳은 결정이라고 본다. 그리고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해서 본 나는 진짜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본작에는 지금껏 등장했던 스파이더맨의 빌런들이 모두 모이고, 그 중 가장 강력한 포스를 자랑했던 것은 윌럼 데포의 그린 고블린.
다른 빌런들은 모두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개심의 여지가 있는 녀석들이지만, 노먼 오스본이 아닌 그린 고블린은 그야말로 순수 악의 결정체다. 오로지 파괴와 파멸만을 원하여 깽판을 치는 미친놈이며, 그것을 데포의 연기가 막강하게 뒷받침한다. '혼자 왜 다른 영화 찍어요....'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눈빛과 표정은 진짜 살벌했다. 특히 피터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김과 동시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아 최후의 전투를 벌이는 점에서, 역시 스파이더맨 최고의 아치 에너미는 그린 고블린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첫 예고편에서 '안녕, 피터' 한 마디로 전세계 팬들을 환호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우리의 문어아재 닥터 옥토퍼스. [스파이더맨 2]보다 훨씬 더 강해진 모습으로 피터를 몰아넣는 모습은 살벌했다. 다만 생각보다 분량이 많지는 않았는데, 중간에 칩이 고쳐져서 세뇌가 풀린 탓이 크다. 하지만 덕분에 막판 활약을 하며 인상을 남기는 데에는 성공. 특히 일이 대충 마무리된 이후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과 재회하여 나누는 대화는.... 여러 의미로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빌런들 중에서는 그린 고블린 다음으로 임팩트가 컸던 일렉트로.
어스파 2의 푸르딩딩한 모습에서, 아크 원자로를 통해 힘을 제어하는 노란 번개맨이 되었는데, 이 편이 원작 코믹스와도 비슷하고 배우의 연기도 좋아서 멋있었다. 어스파 2에서도 참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캐릭터였는데 여기에서 개심을 하게 된 것도 좋은 포인트.

그 외에 CG로 출연한 샌드맨과 리저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리저드는 거의 분량이 없었지만 특유의 괴력으로 삼파이더맨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샌드맨은 원래 악한 캐릭터가 아니었기에 착한 짓과 나쁜 짓의 중간에서 와리가리를 잘 탔다. 여러 모로 듬뿍 팬서비스를 해 준 것.




[스파이더맨 2] 리뷰할 때도 말했지만,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꼽아보라면 크게 두 가지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와 '고생'.

[홈커밍]와 [파프롬홈]에서 결여되었던 것이 바로 저 두 가지였고, 그래서 비판이 많았다. '아이언맨의 사이드킥에 불과한 것 같다'라는 비판의 뿌리에도 저게 있다. 즉 너무나도 미성숙하다는 것이다. [시빌워]에서 첫 등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큰힘큰책임의 정신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이어지는 영화들에서는 '아이언맨처럼 되고 싶다'는 욕심에 너무 경솔한 행동들을 저질렀다. 특히 '내가 해결할 수 있다'라는 생각 때문에 유람선을 두 동강 내는 데에 일조하고, 이번에도 혼자 해결해 보려다 일을 그르쳤다.
또한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최첨단 슈트를 이용해 싸우며, 금전적인 면에서도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지원 덕분에 그렇게 가난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코믹스 스파이더맨 특유의 헝그리 정신과 근성이 좀 약하게 느껴지는 게 있다.

그런 부분들이 본작에서 정신적 성장을 이루며 나아진다. 가장 친한 사람의 희생과 선대 스파이더맨의 도움으로, 그린 고블린을 죽이지 않고 노먼 오스본을 되돌려 놓은 것은, 직전까지 복수심에 불타오르던 눈빛과 더욱 대비되어 깊은 인상을 준다.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곳이 캡틴의 방패 모양을 한 조형물 위라는 점에서 또 의미가 남다르기도.
또한 마지막에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스타크 사의 지원도 끊겨, 작은 월셋방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드디어 진정한 스파이더맨이 되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다소 가학적인 감상평일 수는 있지만 이게 스파이더맨이니까.... 특히 자신이 직접 만든 슈트를 입고 뉴욕을 활보하는 엔딩은 첨단 기술력에서 벗어나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도약하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만 같아서 좋았다. 샘스파식 엔딩 오마주이기도 하고.
톰 홀랜드가 새로운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계약을 맺었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그 뉴스와 함께 본다면 이제 독립된 히어로 스파이더맨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다만 이 과정에서 메이 큰엄마가 희생당한 것은 좀 가슴 아프긴 하다.... 그린 고블린의 사상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선한 사상의 표본이었어서 더욱 그렇고. 기존 스파이더맨들이 각성하는 데에 벤의 죽음이 역할을 했는데 여기선 벤이 진작 세상을 떠났으니 대신 메이를 쓴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큰힘큰책임은 사실상 사망 플래그가 아닌지....


이번 영화가 가장 기대되었던 이유 중의 하나인 전작 스파이더맨들의 복귀.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등장하여 감탄을 이끌어냈던 최고의 팬서비스다.
스파이더맨이 셋이나 되다 보니, 팬들이 종종 '스파이더맨 셋이 함께 만나면 무슨 대화와 상황이 벌어질까?'라는 상상을 종종 했는데, 참으로 대단하게도 이 영화는 그 상상의 대부분을 실현시켜 주었다.

웹 슈터 없이 손목에서 그냥 거미줄이 나가는 토비를 보고 신기해하는 앤드류와 톰, 네드가 '피터'를 찾자 동시에 대답하는 셋, 큰힘큰책임을 모두 알고 있는 상황, 피터1, 2, 3으로 서로를 지칭하는 것, 다소 볼품없어 보이는 자신의 커리어에 주눅이 든 앤드류에게(실제로 어스파가 세 시리즈 중 가장 평이 안 좋기 때문에 메타발언 같기도 했다) "넌 어메이징해"라며 격려하는 토비 등등.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함께 거미줄을 타며 날아다니는 장면. 진짜 꿈에나 나올 것 같았던 장면들이 진짜 영화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너무.... 너무....

그리고 떨어지는 엠제이를 구해낸 앤드류 가필드의 피터 파커가 엠제이를 바라보는 표정. "이번엔 제대로 구했다"라고 말하는 듯한 그 애처로운 표정과 연기.... 본 영화에서 가장 가슴 찡한 장면 중 하나였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2004년의 닥터 옥토퍼스와 중년의 나이가 된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 파커가 재회하는 장면. 20년 가까이 되는 세월을 뛰어넘어 만난 두 캐릭터가 나누는 대화는 마치 팬들에게 전하는 것만 같았다. "다 컸구나."라니, 세상에.

그린 고블린을 개심시키지 못한 게 한이 되어 오랫동안 치료 혈청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는 토비 파커와, 일렉트로는 원래 좋은 사람이었는데 아쉽게 되었었다는 앤드류 파커. 둘은 결국 두 빌런을 정화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남아있던 미련을 깔끔하게 털어버리게 해준 명장면들이며, 특히 일렉트로의 기구한 사연은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딱한 친구이기에, 방전된 후 앤드류와 나누는 만담이 더욱 따듯하고 훈훈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사연 있는 악당이 회개한 후 주인공 히어로와 막역한 대화를 나누는 클리셰"를 좋아하기도 하고.

앞서도 말했지만, 톰 파커는 그린 고블린을 죽이기 위해 글라이더를 내리찍었지만, 토비 파커에 의해 저지된다. 이때 톰을 말린 것은 다름 아닌 토비의 눈빛. 가장 정신적으로 성숙한 그가, 자기 세계관에서 노먼의 죽음을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복수심에 불타는 것이 좋지 않다는 자기 세계관의 메이 큰엄마의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해, 그저 가만히 눈으로 모든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은, 큰힘큰책임을 새로운 방식으로, 가장 농익은 선배 히어로가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걍.... 걍 다 좋았다 이거 말고도 너무 좋은 장면들이 넘쳐난다.



솔직히 단점으로 꼽을 만한 것도 크게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팔짱 심각하게 끼고 완전히 객관적인 심정에서 바라본다면 단점을 찾아낼 순 있을 것이다(하이라이트 전투씬이 너무 컴컴해서 가시성이 떨어진다던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미스테리오를 맹신한다던가 하는). 근데 어차피 이 영화 보러 갈 사람 중에서 그 정도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엔드게임] 이후 가장 대단한 마블 영화 중 하나고, 지난 20년간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시리즈를 사랑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너무나 아름다운 헌사이다. 당신이 마블의 팬이라면,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보러 가면 된다. 쿠키영상까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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