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5. 14:21ㆍ본 영화
몰랐는데 이 영화, 2012년 영화였다. 그것도 [어벤져스]보다 2개월 늦게 개봉한.
모르긴 몰라도 비교질을 엄청나게 당했을 게 눈에 선하다. 퀄리티 차이가 이래서야....
그렇다고 망작 소리 들을 영화는 아니다.
일단 새로운 스파이더맨을 맡은 앤드류 가필드는 아주 열연했다.
샘스파 초반의 토비 맥과이어는 분위기도 그렇고 연기도 그렇고 뭐랄까, 약간 상찌질이 너드의 느낌이 났는데,
이 친구는 그래도 어느 정도 쾌활하고 정의감도 있고, 좀 더 생동감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이 공사장 씬. 스케이트보드로 묘기를 부리고 쇠사슬을 거미줄마냥 타고 날아다니는 장면은, 본작이 샘스파와 비교했을 때 갖는 가장 뚜렷한 차이점인 '하이틴스러움'을 잘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최고였던 것은 이 두 사람의 케미. 앤드류 가필드와 엠마 스톤은 둘을 따로 떼어놓아도 참 열심히 연기했고, 열심히 얼굴을 빛냈지만, 둘이 함께 있을 때 그 시너지는 샘스파도 톰스파도 따라잡을 수 없다. 둘이 진짜 잘 어울린다.
특히 엠마 스톤이 연기한 그웬 스테이시의 경우, 자연스럽게 샘스파의 메리 제인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여러 모로 MJ의 상위호환이라 할 만하다. 납치 원툴이었던 MJ와는 달리 명석한 두뇌로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리자드에게 먼저 달려들어 피터를 도울 생각을 하는 용기까지. 히로인만큼은 3가지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잘 뽑혔다고 할 수 있을 듯.
빌런 캐릭터도 괜찮았다. 어째 샘스파 1편의 그린 고블린이랑 그 과정이 대단히 닮아 있긴 하다만, 배우 리스 이판의 연기도 좋았고, 리자드의 비주얼도 썩 나쁘지 않았다. 얼굴이 뭔가 뭔가이긴 했는데, 괴력 묘사나 꼬리 활용도에서 만족스러웠다.
근데 재생력 좋은 컨셉이긴 하지만 너무 힐링 팩터가 강력한 거 아니냐....
샘스파와 어스파. 두 스파이더맨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지력'일 것이다. 토비의 스파이더맨은 강력한 파워를 이용해 힘으로 싸우는 컨셉이라면, 앤드류의 스파이더맨은 좀 더 잔머리에 치중한 스타일이다. 거미가 먹잇감을 낚듯이 하수도 사방팔방에 거미줄을 쳐서 진동으로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위 스틸컷의 장면처럼 말이다.
요런 식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것은 나름 성공적이었는데, 특히 본작은 피터의 지능 묘사에 꽤 치중했기 때문에 이런 지능형 캐릭터의 어필이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또한 웹 슈터 자체에 집중한 것도 이 시리즈가 유일하다. 톰스파에도 웹 슈터가 나오긴 하지만 슈터보다 슈트에 집중해서 부각되지는 않았다. 이런 점들을 보면 분명 어스파도 다른 시리즈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매력이 분명한 친구다.
무엇보다도 CG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것이 활공 장면이었다. 다소 오버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샘스파보다 훨씬 아크로바틱하고 다양하게 날아다닌다. 민첩성과 두뇌가 주무기인 어스파의 특성을 이런 비행 장면에서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종 결전을 향해 가면서 타워 크레인을 이용해 날아가는 장면은 클라이맥스의 비장함까지 더해진 명장면.
아쉬운 점도 있었다. 주로 스토리와 캐릭터 쪽에서 두드러졌다.
가장 큰 문제점이자 벗어날 수 없는 문제점은, 이게 샘스파 이후 새로 제작되는 시리즈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거미에게 물리고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각성하기까지의 과정이 샘스파랑 거의 똑같이 흘러간다. 과학 견학을 갔다가 거미에 물리고, 제어되지 않는 초능력에 우당탕탕 하루가 흘러가고, 플래시에게 복수했다가 가족과 갈등을 겪고, 홧김에 뛰쳐나갔다가 벤 삼촌을 잃고. 세세한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 요 흐름은 완전 동일하다. 그러다 보니 초반부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어디서도 나온 적 없는 피터의 부모님 이야기를 끼워넣어 차별화를 꾀했지만, 위에 서술한 각성의 흐름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MCU 스파이더맨은 [시빌 워]에서 먼저 등장시키고, [홈커밍]을 [시빌 워] 이후의 시간대로 잡으면서 '어떻게 스파이더맨이 되었는가'에 대한 부분을 샤샥 회피했는데, 나름대로 머리를 잘 굴렸다고 생각한다.
경찰과의 갈등이나 친구 관계 등,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트러블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시도도 했는데, 썩 시원치는 않았다.
뾰족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없으면서 리자드보다 스파이더맨을 잡는 데에 더 많은 병력이 투입된 경찰. 다리에서 스파이더맨이 구해준 시민들한테 진술도 안 받았나? 그것도 피터가 정체를 드러낸 이후에는 가면이라도 바꿔 쓴 듯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정체불명의 마스크 쓴 또라이→경감님 딸 남친"이라 이거지. 우디르도 이거보단 태세 전환 느리다.
플래시도 아쉽다. 벤 삼촌의 죽음 이후로 심경의 변화를 느꼈다는 묘사는 나쁘지 않지만, 너무 갑툭튀인 데다가 이후에 추가 설명을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영 어색하다. 게다가 막판에는 피터랑 친구가 되기까지. 가해자랑 피해자가 친구를 먹는데 화해와 반성의 과정을 이토록 부실하게 묘사하면 욕 먹기 딱 좋은데 그걸 해낸다.
타워 크레인을 조종해서 스파이더맨이 가는 길을 돕는 시민이 여기서 제일 개연성 좋은 행보를 보여준다. 다소 오글거리긴 했지만 행동에 대한 설득력이 가장 충실했다. 바꿔 말하면 위의 둘은 일반 시민캐 1보다도 서사 전개가 부족하단 소리다.
스토리와는 별개인데, 스파이더맨의 '힘'에 대한 묘사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었다.
리자드가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힘을 가진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리자드를 공격하는 피터에게서 '타격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은 좀 마이너스다. 화려함과 묵직함 사이의 저울질이 실패했다고나 할까. 물론 본작의 스파이더맨이 민첩성만 좋은 비실이 캐릭터로 나온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리자드와의 1대1 싸움에서 제대로 된 유효타를 꽂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건 좀.... 스테이시 가문의 어시스트가 없었으면 그냥 골로 갔을 거라구.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름 재밌게 봤다. 샘스파에 비해 좀 더 밝은 분위기에서 흘러가는 것도 좋았고, 상술했듯 남주 여주의 케미가 워낙 좋아서리. 샘스파나 MCU를 머리에서 싹 지우고 본다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었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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