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5. 17:49ㆍ본 영화
한 줄 요약↓
일단, 왜 인간들이 이 영화에 그렇게 환장했는지 아주 잘 알겠다.
동양과 서양 철학을 슥슥 비벼 토대로 삼고,
인공지능이 지배한 미래시대 디스토피아라는 맛나는 SF 설정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캐릭터들의 행동과 대사,
화려한 연출 기법,
선글라스와 롱코트의 간지,
요즘 할리우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가 막힌 육탄전 무술씬.
이거(오늘 이 영화를 처음 봤지만, 이 총알 피하는 장면은 패러디 등으로 숱하게 봐왔다),
"이 중에 니가 좋아하는 게 하나쯤은 있겠지"하는 식으로 온갖 것들을 다 짬뽕시켜놨고, 그게 거의 전세계인을, 1999년의 시대를 만족시켜버린 기가 막힌 작품이다. 지금 봐도 이렇게 재밌는데, 그 시절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직관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세기말에 탄생한 작품들 중 일부는, 세기말이기에 탄생할 수 있었고, 세기말이기에 의미를 지니는 것들이 있다. 이것도 그렇다. 지금도 [매트릭스]와 비슷한 주제의식을 고찰하는 작품들은 널렸다. 하지만 1999년은 지금과는 달리, 기술이 이만큼 발전하지 않은 시대였고, 그때의 SF는 정말로 SF였고, AI에 대한 상상은 정말로 아무 감이 안 잡히는 완벽한 상상의 영역이었다. [백 투 더 퓨처]나 [쥬라기 공원], [터미네이터]도 이런 상상력에 기반한 산물이지만, 1999년은 문자 그대로 세기말이었고, 새로운 천년을 앞둔 상태에서 세계가 갖는 오만 감정들은 어느 때보다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매트릭스]의 세계는 그 불안감이 그대로 증폭되어 반영된 세계와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개인이 무엇인지 고찰한다. 그를 위해 고전 소설을 인용한 비유, 시뮬라르크를 뿌리로 한 서양 철학, 호접지몽을 뿌리로 한 동양 철학 등의 사상들을 공상 과학 시나리오에 녹여냈다. 한마디로 문과와 이과의 가장 완벽한 콜라보레이션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 대단한 것은 철학적인 고찰로만 이루어진 영화가 아니라는 것.
동양 가옥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빌 포스터와 존 윅의 쿵푸 한 판, 후반부에 벌어지는 콘스탄틴과 레드 스컬의 전투 등, 육탄전과 와이어 액션을 적절히 섞은 액션신들이 무척 멋있다.
물론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호텔 로비에서 벌어지는 총격신. 예능 등에서 지겹게 들어온 그 BGM과 함께 벌어지는 슬로모션 파티, 스톰트루퍼 급의 명중률을 보유했지만 슬로모션+BGM+사정없이 박살나는 돌기둥들 때문에 제법 멋져 보이기도 하는 적군의 난사, 풍차돌리기를 하며 공격을 피하는 네오 등, 그 시절의 '간지'가 지금의 나에게도 먹힌다는 것이 대단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영화에 영향 받은 후세 영화 액션신들도 분명 숱하게 있을 것 같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워쇼스키가 이 영화를 '트랜스젠더에 대한 영화'라고 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걸 유념하고 영화를 보니, 실제로 그런 은유가 되게 노골적으로 들어가 있는 점이 보이기도 했다. 영화 만들 때 그 점까지 계산해서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뚜렷하게 포인트들이 잡혀서 그 점이 또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번 겨울에 개봉하는 4편 [매트릭스: 리저렉션]이 2, 3편과 연관이 없고 1편에서 바로 이어지는 내용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확실치가 않으니 2, 3편을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좀 된다. 2편은 재밌다고 들은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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