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31. 11:23ㆍ본 영화
이 짤의 원조가 이 영화였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이 영화의 풀 버전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예고편을 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겠구나' 하는 느낌을 빡 받은 것이지.
어렸을 때 학교에서 틀어줘 가지고 앞부분을 본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기억이 거의 없지만 이 영화를 본 기억은 제법 생생한데, 왜냐하면 그때의 나한테는 이 영화가 끝내주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봐도 무서웠다. 저저저저 시뻘건 눈깔들 좀 보세요. 아주 표독스럽다니까? 지금에서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샘 레이미 감독의 데뷔작은 B급 호러 무비인 [이블 데드]이다. 호러에 쥐약인 나조차도 제목은 들어본 그런 영화. 본작의 요 의사 학살 씬은 소싯적 솜씨를 한껏 살린 나름의 명장면이라 하겠다. 피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지만, 기계 팔들이 의사들을 하나하나 끔살하는 장면은, 가히 공포영화에 필적하는 소름이었다. 특히 바닥에 손톱자국을 진하게 남기며 질질질 끌려가는 그거는 진짜....
별개인데, 넷플릭스에서는 저 기계 팔들을 '촉수'라고 설명해놨다. 뉴욕을 위협하는 촉수 악당.... 촉수 악당.... 촉수....
언 놈이 크툴루라도 소환했냐?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닥터 옥토퍼스가 당신을 용서치 않을 것이오.
일단 비주얼이 전작보다 좋아졌다. 전작도 충분히 멋있었지만,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눈이 돌아간다. 전작보다 날아다니고 돌아다니는 장면들이 많아서 더욱 그렇게 느꼈다.
활공뿐만 아니라 빌런과의 액션도 더욱 멋있어졌다. 전작의 그린 고블린은 스파이더맨처럼 날아다니는 녀석이라서 육탄전을 벌일 일이 잘 없었는데, 본작의 닥터 옥토퍼스는 기계 팔을 이용한 전투를 하는 녀석이라 상대적으로 몸싸움을 벌일 일이 잦았고, 건물과 기차 등에서 치열하게 투닥거리는 멋진 장면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멋졌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이 열차 장면. 현재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히어로 영화 최고 명장면 중 하나다. 건물에 붙들어 놓은 여러 겹의 거미줄과, 스파이더맨 자신의 근력만을 이용해 폭주하는 열차를 강제로 멈추게 하는, 샘스파 스파이더맨의 힘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자, 동시에 영웅의 자기희생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다. MCU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도 오마주를 할 정도니 말 다 했지.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의 핵심 키워드를 꼽아보자면, '책임'과 '고생'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전작보다 저 두 키워드가 더욱 강조된다.
1편은 아무래도 시리즈 첫 작이다 보니 대놓고 갈구지는 않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진짜로 스파이더맨과 피터 파커를 동시에 갈군다.
그리고 그것은 기레기 사장이나 친구들과의 관계 등의 요소도 있지만, '스파이더맨과 피터 파커의 삶을 동시에 살아가는 것'에서 기인하는 문제이다.
즉 노웨이홈 예고편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톰 홀랜드 피터 파커에게 한 얘기는, 사실 15년 전에 이미 했던 얘기다.
그 부분에 대한 해답은 메이 숙모(a.k.a. 큰엄마)의 명대사에 나와 있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피터와 옥박사다.
오토 옥타비우스는 핵융합 실험을 하다 자만하여 실수를 저질렀고, 건물 하나를 날려버림과 동시에 자신의 아내를 포함한 다수의 인명 또한 손상시켰다.
여기서 '책임' 있는 행동이란, 자신이 저지른 사고에 대한 사죄나 수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제어 칩이 박살나는 바람에 기계 팔들에게 세뇌되었고,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실험을 다시 해야 한다"면서 닥터 옥토퍼스로 각성한다.
그리고 막판에 스파이더맨에게 얻어터지고 감전된 후에 제정신을 차리고, 피터에게 명대사를 주사받고 겨우겨우 제정신을 차린다. 이후 자신의 핵융합 기계와 함께 동귀어진하며 괴물로 죽지 않게 되었다.
피터는 위험하게 노는 아이들을 구조하다가 알바를 짤린다. 열심히 히어로 활동을 하느라 수업에도 지각하고 교수님께 구박도 받고, 그 사실을 지인들에게 숨기느라 MJ도 지쳐버린다. 게다가 절친인 해리는, 스파이더맨이 그의 아빠인 그린 고블린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플러스로, 또다른 자금원인 데일리 뷰글은 스파이더맨 사진 이외의 일거리를 거의 받지 않는데다가 돈도 무지하게 조금 주고, 편집장이란 작자는 허구한 날 스파이더맨을 음해하는 가짜 뉴스를 찍어댄다.
결정타를 먹인 것은 MJ에게 생긴 새 남친. 엄밀히 따지면 전편에서 MJ의 고백을 거절했으니 지가 분해 할 게 뭔가 싶긴 한데.... 여하튼 해리한테 배신자라며 욕도 얻어먹고, 좋아했던 여자의 약혼 장면을 본 피터는 멘탈이 박살나서 초능력도 잃어버리고 스파이더맨 생활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다가 사람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옥박사에게 납치당한 MJ, 그리고 메이 숙모의 명언으로 다시 스파이더맨의 힘을 되찾는다. 그리고, 위의 열차 장면을 통해 힘을 가진 영웅의 자기희생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결국 두 캐릭터 모두 자신이 저지른 일과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명언의 또다른 변주라고 볼 수 있겠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이 영화를 단순히 오락 영화로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다.
단점도 있다. 얘다.
그냥 영화 감독이랑 제작진이 메리 제인이라는 캐릭터를 잘 못 다루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물론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캐릭터임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정말 이게 최선이었나? 다른 캐릭터들은 다 자기만의 역할이 있고 디자인이 잘 되었는데 왜 얘만 이래? 샘 레이미 당신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
작중 메리 제인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납치당하는 인질, 남자 갈아타기, 피터 멘탈에 혼란 주기. 즉 자기 자신의 능동적인 행동이 없는 NPC 같은 캐릭터다. 후대의 스파이더맨 히로인과 비교를 하지 않아도 정말 하는 일이 없다. 명색이 MJ고 명색이 커스틴 던스트인데 취급이 너무 박한 게 아니냐 진짜....
물론 MJ의 존재가 이 영화 전체의 평가를 깎아먹을 정도는 되지 않는다. 스토리 액션 비주얼 모두 잘 잡은 웰메이드 영화니 못 만든 히로인 정도는 어찌어찌 넘어가줘야지. 불평한다고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특히 [노웨이홈] 예고편을 본 상황에서 본작을 보니, [노웨이홈]에 대한 기대치가 더욱 높아졌다. 괴물로서 최후를 맞지 않게 된 닥터 옥토퍼스가 어떻게 해서 MCU 세계관에 빌런으로 재등장하게 되는 것인지, 그린 고블린을 포함한 다른 빌런들은 어떻게 오게 된 것인지.... 12월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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