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을 봤습니다.

2021. 7. 31. 14:57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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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요약: 해리 오스본의 인생 역정기

 

 

 

놀랍게도 나는 이 영화를 오늘 처음 봤다. 뒤의 후속편 둘은 옛날에 학교에서 틀어줘서 본 기억이 있는데, 이 영화는 완전 처음이다. 기묘한 일이지....

 

아무튼 기념비적인 영화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실시영화 시리즈 a.k.a. 샘스파의 첫 영화이자, 어둠의 댄서 토비 맥과이어의 출세작이기도 한 이 영화. 이제 20년이 다 되어가는 영화라 좀 옛날 느낌이 물씬 나긴 했지만, 그래도 되게 볼만했다.

 

 

 

무엇보다, 같은 캐릭터로 세 개째 시리즈를 울궈먹는 바람에 이제 와 이 대사를 치기엔 지들이 생각해도 너무 지겨워서 은근슬쩍 돌려말하는 은유로만 끝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버전 스파이더맨과 달리, 본작은 스파이더맨의 첫 실사영화 시리즈이기 때문에, 거미 능력을 갖는 과정과 그 시행착오, 위의 스틸컷에서 나오는 '그 대사'까지 아주 생생하게 나온다. 물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도 해당이 되긴 하나, 그것 또한 두 번째 시리즈인만큼 맛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무엇보다 이 수트 디자인. 내 세대에게 아마 가장 익숙한 디자인일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이게 제일 멋지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수트보다 세련됨은 떨어지지만, 좀 더 날것의 야성적인 뭔가가 느껴진달까. 무엇보다 여기 피터 파커는 이걸 자기 혼자 디자인했다. 이 훌륭한 미적 감각. 게다가 수트 자체의 특수 기능은 제로로, 오로지 자기 피지컬만 믿고 싸우는 전형적인 딜러다. 대단히 오리지널스럽다고도 할 수 있겠다.

....딱히 꼰대스러운 발언을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까 오리지널 추종자처럼 말이 나오고 있네. MCU 스파이더맨도 좋아합니다.

 

 

 

이 영화 최고의 매력 포인트는 요 그린 고블린.

윌럼 더포의 연기가 정말 기가 막혔다. 특히 거울을 이용해서 이중인격 연기를 할 때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역시 명배우. 또 마스크를 보고 설설 기면서 연기하는 것도 엄청났다. CG 티가 굉장히 많이 나는 디자인이지만, 폭탄과 글라이더도 멋있었고, 연기가 정말 좋아서 되게 멋진 캐릭터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건, 원작의 그린 고블린(노먼 오스본)은 스파이더맨 최대의 숙적일 정도로 스케일이 크고 명줄도 긴 빌런인데, 실사화가 되면서 한 편에만 쓰이고 끝나버려서 그게 좀 아쉽다. 물론 이때는 지금의 MCU처럼 대형 장기 프로젝트로 끌고 갈 계획도 없었으니....

비슷한 이유로 올 9월에 개봉하는 [샹치]도 걱정된다. 원작의 만다린도 엄청 강력한데다가 아이언맨 최악의 아치에너미로 꼽히는 장수 캐릭터인데, 1편만 쓰이고 버려지게 된다면 대단히 밋밋하지 않을까 하는.... 뭐 알아서 잘 하겠고, 까봐야 알겠지만.

 

 

 

이제는 어둠의 댄서가 되어버린 샘스파의 피터 파커, 토비 맥과이어. 근데 정말 찌질하더라. 웃을 때도 울 때도 찌질함이 흘러나와서.... 그만큼 연기를 잘 했다는 거지만. 되게 잘생긴 배우인데 흘러넘치는 찌질함 때문에 빛바래는 느낌도 있어서 아쉬웠다. 원작의 투머치토커 기질도 없고....

그러고 보면 피터 파커일 때와 스파이더맨일 때는 목소리 톤이 완전히 다르던데, 이런 디테일을 살린 것도 좋았다. 외에도 온갖 괴성을 지르며 날아다니기까지. 얼굴을 가리니까 용기가 치솟는 건지.... 

 

 

 

다시 봐도 이 장면은 참 좋다

MJ가 나온 스틸컷이 이게 다네. 네이버 영화는 각성하라.

하여튼, 커스틴 던스트다. [이터널 선샤인]에서도 애인 문제로 고생하더니 여기서도 똑같다.

그리고 정말 전형적인 '붙잡힌 히로인' 포지션. 제 역할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곤경에 처해서 소리지르는 것들이라.... 좀 멋들어진 분량 좀 주지.

그래도 매력 포인트는 충분했고,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를 잘해서 별로 불만은 없었다. 다만 스파이더맨과 피터 파커를 동시에 사랑하는 대담한 성격은.... 어째 연애 관련으로 참 뭐가 많은 캐릭터야.

 

 

 

잘생겼다. 그러고 보니 이 양반 동생은 다른 영화에서 몇 번 봤는데 이 양반은 처음 보네.

 

하여튼.... 이 영화에서 제일 고생 많이 한 캐릭터다.

생각해보자,

유일한 절친은 자기보다 더 자기 아버지에게 예쁨 받지,

좋아하던 여자는 아버지의 폭언으로 인해 사이가 틀어졌지,

그 여자는 이제 자기의 절친과 이어졌지,

게다가 웬 정체불명의 초능력자에게 아버지가 살해당했다(오해이긴 하지만).

남은 가족은 사실상 자기 애인을 빼앗아간 자신의 절친뿐이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이 녀석은 이 역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터 파커를 친구로서 아끼고 사랑한다. 세상에 이런 돌부처가 어디 있나. 영화 내에서 단 한 번도 피터에게 성을 낸 적도 없다. 진짜 베스트 프렌드 그 자체인 것이다. 찌질 파커니 뭐니 하지만 친구 복은 끝내주는 녀석이다. 

 

 

 

 

 

본 영화는 2002년 개봉한 영화다. 이제 20살이 다 되어가는 친구인데, 그렇기 때문에 살짝 옛날 영화같은 느낌도 제법 든다. 특히 그린 고블린.

그러나 당대 기준으로는 굉장히 발전된 그래픽의 영화고, 지금 봐도 스파이더맨이 고공 빌딩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장면은 MCU 스파이더맨보다 훨씬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제일 좋았던 것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를 대단히 직관적으로 보여준 것. MCU에서는 아이언맨, 벌처 등의 캐릭터와 피터 파커 개인의 욕망 등을 버무려서 영화 전체를 그 주제로 채웠는데(예를 들어 벌처의 "감당할 수 없는 일에는 끼어들지 말았어야지"라는 대사는 큰힘큰책임을 살짝 뒤집어서 표현한 대사이다), 본작에서는 '내가 그냥 보내준 강도의 총에 맞아 삼촌이 죽었다'라는 하나의 강렬한 사건을 통해서 피터의 정신적 각성을 되게 빠르게 끝냈다. 덕분에 피터는 힘을 가진 영웅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영화 중반부쯤에 이미 갖추게 되었고(그린 고블린의 습격 이후 해리와의 대화에서, "그 녀석이 뭐든 누군가가 막아야 해"라고 말한 것 등), 제법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MCU 피터 파커가 특유의 미숙함 때문에 후반까지 개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더욱 비교된다.

 

아쉬운 점은 있다. 역시 비주얼적인 요소는 지금 와서 이 영화를 보니 좀 투박한 느낌이다. 갠적으로 MCU 스파이더맨의 빌런들 디자인을 엄청 마음에 들어하기 때문에 더 그린 고블린이 아쉽다. 톰 홀랜드가 당분간 좀 쉬겠다고는 했지만, 노먼 오스본이 워낙 원작 코믹스에서 영향력이 큰 빌런이니까(물론 스파이더맨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녀석이긴 하다만), MCU식으로 리메이크해서 등장시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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