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위도우]를 봤습니다.

2021. 7. 11. 13:47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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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요약: 역시 [엔드게임]에서 호크아이가 희생했어야 했다.





MCU 없는 2020년을 지나 드디어 개봉한, [파프롬홈] 이후 첫 MCU 영화.
간략한 감상평을 말하자면, 일단 재미있었다. 그런데 만점짜리는 아닌.


일단 단점 첫 번째. 악당이 시원찮다.
태스크마스터라는 캐릭터와 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태스크마스터가 가진 능력은 상대의 기술을 카피해서 싸우는 것인데, 작중에서 주로 보여준 것은 호크아이의 활 사격, 캡틴의 방패 기술, 블랙 팬서의 클로 공격, 윈터 솔져의 칼부림, 스파이더맨의 거미줄 비행 등을 카피한 모습을 보였다.
근데 이건 이전의 전투 자료 등을 보고 카피한 거고, 태스크마스터의 가장 큰 특징인 '상대의 동작을 그대로 복사한다'가 잘 구현되지 않았다. 나타샤랑 전투하면서 딱 한 번 나온 게 끝이다. 그 한 번이 나름 괜찮게 나와서 기대했는데 이후로는 다른 히어로들 능력 베낀 것만 주구장창 나오니.... 이게 무슨 카피닌자 카카시도 아니고.


요거는 멋있었음.

그리고 개조와 세뇌를 거친 살육 머신 같은 느낌이라 인간적인 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쉽다. 원작 태스크마스터는 그냥 해골바가지이긴 해도 나름 유머러스한 친구였는데 말이지. 물론 영화판은 제법 카리스마가 있기도 하고, 갠적으로는 저렇게 리뉴얼된 코스튬이 나름 잘 나왔다고 생각해서 디자인은 마음에 든다. 다만 능력의 미흡함이나 분량, 서사 등이 여러모로 아쉽다. [앤트맨과 와스프]의 고스트 같은 느낌? 어째 페이즈 4 들어서 마블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매력이 떨어지는 빌런'이 다시 고개를 쳐드는 느낌인데.... [샹치]나 [이터널즈]는 기대해봐도 되려나.



그리고 문제점 1-2. 마찬가지로 시원찮은 진 최종보스.
슈퍼휴먼을 세뇌해서 자기 꼭두각시로 써먹는 빌런은 [윈터 솔져]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그것과 비교해보면 본작의 빌런은 완성도도 치밀함도 매력도 모두 떨어진다. 관객과 등장인물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없고, 전략적으로 히어로 측을 위협하는 비범함도 없다. 장기말들을 끊임없이 뿌릴 뿐.... 게다가 마지막에는 자기가 이겼다는 생각에 핵심 플랜들을 줄줄이 자백해버리는 짓거리까지. 영화 보기 바로 전날에 [죠죠의 기묘한 모험: 다이아몬드는 부서지지 않는다]를 정주행한 나는 졸지에 이틀 연속으로 '승리했다는 생각에 자아도취해 스스로의 정보를 술술 불어버리는 최종보스'를 2연속으로 맞이해야 했다....


두 번째 문제점. 뭔가 애매한 액션신.
블랙 위도우는 기본적으로 스파이 캐릭터지만, 육탄전을 할 때는 몸을 요리조리 움직이면서 제법 화려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캐릭터인데, 이번 작품에선 그게 좀 약했다. 그래도 부다페스트의 카체이싱 장면은 제법 멋지긴 했는데 다른 것들은 뭔가 액션신이 진득하게 이어지는 느낌이 아니라 감상하는 맛이 좀 떨어졌다. 그래도 위 스틸컷에 나온 공중 낙하 씬은 엄청 멋있어서 좋긴 했다. 저것도 길게 이어지지 않아서 문제지....
하지만 임팩트 있는 장면들도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에 아주 못 볼 액션신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느낀 것도 길이가 아쉬웠던 거지 질이 떨어진다 그런 건 아니었고. 특히 플로렌스 퓨의 옐레나가 맡은 장면에서 멋진 장면이 많았다(바주카 같은 걸로 감시탑 날려버리고 "하!" 할 때의 그 통쾌함이란).



아니 왜 네이버 영화 스틸컷에 멜리나가 없는 거요

세 번째. 가족의 재결합이 뭔가 좀.... 뭔가다.
다만 마블식 가족 영화의 특징은 잘 살아있어서 좋았다. [어벤져스]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보면, 서로 피가 이어져 있지 않고, 정말 더럽게 툭탁거리지만, 필요할 때는 또 마음이 잘 맞는 동료로서 함께 싸워나간다. [가오갤 2]에서 드랙스는 '우리는 가족이다'라고 말했고, 나타샤 역시 어벤져스를 자신의 가족으로 여긴다.
본작에 나오는 4명의 캐릭터들 역시 위에 나온 가족들과 비슷한 형태를 갖는다. 혈연관계는 아니고, 더럽게 투닥거리지만(정확히는 애들이 부모님을 싫어함), 어쨌든 결국 하나 되어 악당을 무찌른다. 이런 점에서 [블랙 위도우]의 가족은 지극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스러운 가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근데 문제는 다시 뭉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심리 묘사나 서사 등이 많이 부족하다. 행동 동기에 대한 설명이 없다 보니 이 타이밍에 얘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아까까지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는지 등등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함이 느껴진다. 러닝타임 문제도 있겠지만 그러면 주어진 러닝타임 내에서 시간을 알차게 써먹어야지. [블위 2] 같은 게 나온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미 [엔드게임]에서 나타샤가 희생했는데 그럴 리는 없을 거자나....


4번째 문제점. 오른쪽 친구 옐레나의 분량이 너무 많다.
일단은 블랙 위도우의 솔로 무비인데, 동생분이 활약을 더 많이 한다. 액션, 서사, 유머 모두. 게다가 쿠키 영상까지. 뉴 블랙 위도우를 위한 발판으로 써먹겠다는 뜻인지 뭔지....
물론, 블위 솔로 영화라고 해서 블위 혼자 원맨쇼하는 그림도 좋지 않다. 본디 이런 히어로 영화라는 게 메인 히어로×조력자×빌런 삼박자가 어우러져서 여러 티키타카가 맞아떨어지는 게 멋진 그림이 나오지 않은가.
근데 위에서 말했다시피 빌런이 시원찮은데, 여기에 둘 분량 조절마저 애매해버리니까 저울이 균형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이게 스칼렛 요한슨과 블랙 위도우의 마지막 솔로 영화가 될 거라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너무 단점만 늘어놓았는데, 그래도 이 영화의 매력도 충분하다.

최종보스는 시원찮지만, 레드룸이라는 조직에 대한 설명은 꽤 충실하다. 그들의 위험성과 잔악함을 잘 설명해줘서 '이것들이 정말 위협적인 적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감독이 예전에 인터뷰에서 '여성 학대와 미투 운동에 대한 영화다'라고 인터뷰를 했다던데, 그 말은 확실하게 지켰고, 잘 표현해냈다. 특히 그런 요소가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의 서사에 잘 녹아들어서, 어색하지도 않고 튀지도 않는 좋은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후반부에 나오는 대사인 '이제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는 그 백미. 이 점에서는 타 마블 영화와 비교해도 시원스러워서, 개인적으로는 요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만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캡틴 마블] 개봉 직전까지 호들갑 떨던 누군가들이 생각나기도 했고.
+)레드룸 외에도 이런 페미니즘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들어있는데, 다 보고 난 후 감독 인터뷰 등을 찾아보며 관련한 내용을 곱씹어보는 맛이 있었다. 관람 직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지만, 조금 차분히 되짚어보니 이쪽에서 여러 좋은 포인트들을 채굴해낼 수 있었다.



오프닝 장면은 정말 좋았다. 첩보물을 방불케 하는 불안한 긴장감과, 경비행기vs쉴드의 추적 차량에서 벌어지는 총격신까지. 빈말 안 하고 본작 최고의 액션신이라 할 만 했다. 스틸컷이 없어서 못 보여드리는 게 아쉬울 뿐. 그러고 보니 레드룸도 스틸컷이 없네. 장점을 쓸라치니까 갖다 쓸 사진이 없다니 뭐 이런 경우가....



https://youtu.be/xkLX6pEmP2I

특히 이 배경음악과의 조화가 환상이었다. 영화 볼 때 이게 'smells like teen spirit'이란 걸 몰랐을 정도로 편곡이 잘 되었고, 영화와 잘 어우러졌다. 함께 나오는 장면도 나타샤가 레드룸의 위도우로 훈련받은 과정을 간결하고 임팩트 있게 보여줘서 좋았다.


분량 갖고 뭐라 하긴 했는데, 그 분량만큼 '옐레나 벨로바'라는 캐릭터의 완성도는 꽤나 높다. 본작에 새로 등장한 인물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인상 깊은 캐릭터다. 나타샤와는 대비되는 유머러스한 성격에, 의외로 가족을 소중히 하는 여린 마음, 시원시원하게 총포를 휘갈기는 장면 등. 특히 슈퍼히어로 착지를 가지고 언니를 놀리고, 나중에 자기가 직접 해보더니 오글거림에 몸서리 치는 장면은 본작 최고의 개그씬.





아무튼 쓰다 보니 단점만 너무 많이 얘기했는데, 어쨌든 영화는 진짜로 재미있었다. 숱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재미있었다고 느낄 만한 매력은 충분하다. 무엇보다 '마블'이니까.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마블 영화인데 안 보고 배길 건감. 아쉬운 부분은 있다 해도 최소한의 재미는 무조건 보장한다.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역시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무조건 엔드게임 전에 개봉했어야 했다. 나타샤가 죽는 걸 알면서 보자니 빡침이 점점 배가 되는 느낌이다. 역시 호크아이가 희생했어야 했다. 여기서 이렇게 멋진 모습 보여 놓고 그런 최후를 맞이한다는 게 정말이지....
물론 이런 전개는 '뒤늦게 나온 프리퀄 영화'들이 다들 겪는 종류의 문제점들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기분이 좋지 않다. 이 네 가족의 케미를 볼 수 있는 영화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니.... 예토전생을 쓰든 점을 찍고 나오든 어떻게 해서든 한 번만 더 나와주면 안될까요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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