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 영화

[승리호]를 봤습니다.

by 표류선 2021. 2. 15.
728x90

 

 

 

 

 

 

 

김향기 장발

이거면 충분하다.

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그 값어치를 충분히 다 했다.

 

아무튼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라고만 얘기를 듣고 봤는데, 일단 호불호가 갈릴 만 했다. 나는 재밌었지만.

 

비주얼은 합격. 합격 수준이 아니고 한국영화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신과함께]가 이전 최고 기록이었는데, 그걸 훨씬 상회하는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후반부의 우주 전투씬은 그야말로 장관. 우주 공간을 신나게 날아다니는 업동이와, 승리호vsUTS 우주선들의 미사일 전투. 게다가 이 모든 것이 240억이라는, 할리우드 영화의 몇십 분의 일 정도 되는 돈으로 만들어졌다는 점. 세상에 이런 남는 장사가 있나. 참고로 [신과함께]가 편당 170억 정도였고, 현재까지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간 한국 영화인 [설국열차]가 대략 500억 정도라고 한다. 그 [설국열차]도 미국 양반들한테 저예산 영화 소리 들었다는 썰을 생각해보면... 진짜 [승리호]의 이 퀄리티는 어마어마한 거다.

 

그리고, 만능 통역기를 사용한다는 설정 덕분에 한국어와 영어를 비롯한 온갖 언어가 총출동한다. 덕분에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우주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그런 이질적인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점 덕분에 국뽕 연출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게 포인트. 메인 빌런에 맞서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다 함께 맞서 싸우는 연출은 확실히 '지구는 미국인이 지킨다'식의 전개가 아니어서 굉장히 좋았다. 그리고 사실 이게 현실적인 연출인 거고...

 
그리고 신파가 적은 것도 좋았다.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신과함께]에서 무리수 둬가면서까지 그 난리부르스를 해댄 걸 생각하면 이 영화의 신파는 나름 납득이 가는 전개였고 그렇게 거슬리지도 않았다. 물론 지겹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겠지만...(그래서 나도 2번째 신파 씬은 적당히 스킵했다)



다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특히 외국인 배우들의 연기. 카룸 정도는 그럭저럭 봐줄 만 했는데, 그 외의 여러 엑스트라들, 특히 설리반과 독대하는 외국인 기자의 연기는 많이 별로였다. 계속 겁에 질린 안색에, 연출 면에서도 부족했고. 혹자는 서프라이즈 재연배우들 보는 것 같았다고 하던데,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그리고 대사도 은근히 오글거린다. 꼬박꼬박 이름을 부르는 것도 그렇고, 대사가 영화가 아닌 연극을 보는 느낌. 그래서인지 분명 베테랑 배우들을 데려왔으면서도 종종 어색한 연기들이 있었다. 서프라이즈식 연기가 오롯이 배우들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은 나노봇 설정. 중반부까지는 그럭저럭 봤는데, 마지막 씬에서는 작위적인 냄새를 참지 못했다. 전개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개사기 능력으로 설정한 게 너무 티가 났다. 게다가 왜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도 설명을 제대로 안 하고. 밸붕도 이정도면 각본가가 게을렀다고밖에는...

 

 

 

 

 

 

 

 

조종사 김태호. 배우는 송중기.

나는 연기하는 송중기를 [뿌리깊은 나무] 이후로 처음 본다. 이렇게 말하니까 무지하게 늙은이 같은데, 그냥 드라마를 안 봐서 그렇다...

비중을 기준으로 잡으면 아마 이 양반이 제일 얼굴을 많이 비춘 듯. 조종사보다 선장이 분량이 많다니 하극상이닷.

아무튼 과거사도 착실히 들어나고, 조종 실력도 마음껏 보여줬고, 신파도 혼자 다 가져가고(...), 돈욕심도 뚜렷하게 드러냈고. 물론 이유가 있는 돈욕심이었지만, 마음을 다시 먹는 계기가 신파 한 번으로 설명을 끝내니까 영 그랬다. 그 직전까지 오로지 돈에 포커싱이 되어 있었으면서. 영화 내에서 가장 서사가 착실한 캐릭터이긴 했지만, 중요한 감정 변환의 장면에서 살짝 부족함을 보인 게 아쉬웠다.

 

 

 

 

 

 

 

장선장. 본명 장현숙. 배우는 태리야끼 김태리.

작중 인물들은 죄다 장선장이라고만 칭한다. 본명을 모르는 건지...

 

그리고 선장인데 은근히 하는 일이 없다. 정확히는 뚜렷한 포지션이 없다. 적당한 카리스마를 겸비한 전투원 느낌. 그 전투도 사격에 능하지 육탄전이 부족하고. 배우가 연기를 잘해서 캐릭터 자체는 매력을 느꼈지만, 태호와는 달리 과거사 설명도 부족하고(사실 태호를 제외하면 다 과거사 설명이 부족하다), 바로 직전에 정의롭지 못하다면서 끌끌댔는데 계약 체결되니까 기뻐하고. 속된 표현으로 지 꼴리는 대로 움직이는 느낌. 물론 그 부분이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단 태호랑은 달리 신파 분량이 하나도 없으니 감성팔이 캐릭터 느낌도 없다. 아마 승리호의 일상 부분에 좀 더 포커싱을 맞췄다면, 럭비공 같은 캐릭터로 꽤나 호감 게이지를 쌓지 않았을까나.

 

 

 

 

 

 

 

죽창러 박씨. 자칭 타이거 박. 배우는 진선규.

이 양반도 본명이 딱 한 번 나왔다. 그리고 까먹었다.

 

저 얼굴로 애들을 무지 좋아한다는 갭모에를 선사하는 캐릭터. 덕분에 꽃님이랑도 잘 놀아줘서 분량이나 존재감도 쏠쏠하다. 특히 최첨단 시대의 최첨단 우주선을 본인이 손수 기관실에서 개고생해가면서 움직인다는 것은 은근한 간지 포인트.

이 양반도 과거사를 간단히 설명하고 끝냈지만, 과거가 특별히 스토리 전개의 키포인트가 되는 편은 아니고, 짤막하게 넣은 복선을 회수하는 정도로도 깔끔하게 역할을 다해서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후반부 카밀라와의 전투 이후 다시 복귀하는 장면은 좀 그랬다. 손모가지를 찍고, 카밀라의 비명이 들려오자마자 짠 하고 복귀해서, "응? 어떻게 다시 올라온 거야?" 하게 되었다. 사소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단히 어색해서...

그래도 이런 점 빼면 대체로 마음에 드는 캐릭터.

 

 

 

 

 

 

 

어이 고광렬이... 손모가지로 모잘라서 몸뚱이를 죄다 반납해버리면 어쩌잔 거냐.

심지어 이 지경이 되어서도 밑장빼기를 해버리는 타짜본능. 여러분 이래서 도박이 해롭습니다.

하여튼 신스틸러 업동이. 모션 캡처 연기는 유해진.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세상에 한국 영화에서 이렇게나 상냥한 캐릭터가 등장할 줄은 몰랐다. 근래 참으로 사건사고가 많았는데, 이렇게 멋진 방식으로 어떤 목소리를 들려준 거 같아서, 이 부분만으로도 이 영화에게 참 고마움을 많이 느낀다.

 

 

 

 

 

 

 

참나무방패 설리반. 배우는 리처드 아미티지.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 도대체 캐릭터가 이해가 안 된다.

물론, 사이코패스 악역 캐릭터를 '이해'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굉장히 불친절한 캐릭터다.

태호 다음으로 과거사를 많이 푼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태호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과거 씬을 직접 보여주는 게 아닌 말 몇 마디로 설명을 끝냄으로써, 인물의 동기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했다.

다만, 이 양반의 나이가 152살이고, 작중 시점이 2092년인데, 그러면 이 사람은 1940년생. 즉 이 사람이 말하는 가족을 잃게 된 대학살은 아마 2차 세계 대전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그 광경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라면 인류에게 질리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렇다고 해도 작중의 행위들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게다가 2차 대전의 피해자이면서, UTS 시민을 선발하는 기준은 그야말로 우생학이다. 선민사상은 덤이고. 이래선 히틀러랑 다를 바가 뭐냐. 그리고 인간이 아닌 지구까지 날려버리려는 그 계획은 정말이지 오바다. 다른 단점들은 다 제쳐둔다고 해도, 메인 빌런을 이렇게밖에 못 만든 것은, 그리고 리처드 아미티지라는 배우를 이렇게밖에 써먹지 못한 것은 나노봇 문제와 함께 이 영화의 대단히 아쉬운 단점으로 남을듯.

 

 

 

 

 

쓰다 보니까 단점을 더 많이 나열한 느낌인데, 그래도 이 영화는 재밌었다. 원래 곱씹으면 문제점이 눈에 띄게 되는 법이여.

분명히 이 영화만의 매력을 많이 가지고 있고, 취향이 맞다면 정말 만족스럽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