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0. 11:47ㆍ본 영화


이게 픽사지.
이게 픽사야....
화면도 예쁘고, 캐릭터들도 예쁘고, 대사도 예쁘다. 마음이 몽글몽글 따스해지는 이 맛. 이게 픽사지.
다소 클래식 클리셰한 전개라 막 그렇게 재밌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전개 외의 모든 것들에서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이런 맛 극장에서 얼마만에 맛 보는지....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새 영역을 개척하며 역사를 썼다면, 본작은 원래 하던 분야에서 역사를 썼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불, 물, 공기, 흙에 대한 그래픽 표현이 진짜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개발력을 쏟아부었을지 가늠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 아주 자연스럽게 일렁거리는 불과 물은 기본이고, 캐릭터들과 자연물 등이 상호작용하며 발생하는 변화들은 기존 3D 애니메이션을 또 한 단계 뛰어넘은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비주얼적으로 흠 잡을 데가 전혀 없으며, 흠 잡는 사람은 진심으로 억까라고 생각한다.

또한 '원소'에 대한 상상력도 빛난다. 열을 이용해 유리를 빚는 불 원소, 파도를 타고 무지개를 만드는 물 원소, 하늘을 날며 공기방울을 만드는 공기 원소 등, 단순히 태우고 적시고 날리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창의력을 한껏 발휘해서 도시 생활상을 보여준 것이 무척 좋았다.
다만 불과 물에 좀 치중된 비중은 좀 아쉬웠다. 게일 덕분에 공기 원소의 매력도 제법 보여주었지만, 특히 흙 원소가 많이 빈약했던 것은 아쉬운 부분.

기분 좋은 BGM들도 영화의 분위기에 한몫을 한다.
웨이드와 엠버의 데이트 장면에서 등장하는 Lauv의 'Steal the show'는 두 사람의 아기자기한 데이트 분위기에 잘 어우러지며 한껏 시너지를 보여주었다. 영화가 더 히트했었다면 차트 순위도 노려볼 만했을 텐데.... 안타깝다.

상술했듯이 스토리는 굉장히 클래식하다.
서로 사랑할 수 없는 관계의 두 남녀가 이것저것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들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여러 요소들을 초월해 마침내 맺어지게 되는, 중세 때부터 내려온 흔하디 흔한 그런 스토리.
그런데 여기에 불과 물이라는 속성을 부여하고, '현실 인종과 문화'를 반영하여 굉장히 색다른 맛을 뿜어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분석했듯이 불 원소는 아시안 특히 한국계를 상징하고, 물 원소는 백인계를 상징한다. 현실 인종을 원소로 은유하면서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에 맞닿아 있는 묘한 연출을 자아내는 것이다.
특히 엠버 집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이 현실 한국인들과 많이 닮아 있어서 더욱 한국에서 평가가 좋기도 하다. 이미 엠버는 'K-장녀'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영화 일등공신, 웨이드.
세상에 물이 이렇게 로맨틱하게 보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야말로 일렁이는 감성. 웨이드는 엠버에게 '네 빛이 일렁일 때 정말 좋더라'라고 말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격렬하게 일렁였던 건 웨이드의 모든 것이다.
그리고 가만 보면 얘가 참 말을 예쁘게 한다. '우리 사이가 안 될 이유는 수백 가지가 넘지만, 너와 내가 손을 맞잡았을 때 무언가가 태어났어. 그거 하나면 된 거 아니야?'라니, 위의 대사와 함께 올해 들은 가장 로맨틱한 대사 TOP 2이다. 불에 대비되는 원소인 만큼 다소 차가운 설정을 부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따스함은 불 못지 않은 것이 참 좋았다.

뭐 이 감성적이고 따스한 면까지 백인계의 특징으로 설계한 건 아닌 거 같고, 그냥 물의 특징으로 부여한 것같다. 보면 웨이드 가족 전체가 너무 투머치 갬성이기도 하고 ㅋㅋㅋㅋ 아무튼 설정 잘 잡았어.
어쨌든 맨날 하는 얘기라도 이렇게 스페셜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이들의 씽크빅에 감탄을 보내고 싶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전개가 정말 정석적이다. 그렇지만 '아우 지겨워'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들의 관계성과 그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화학작용에 그저 집중했을 뿐.
다만 어쨌든 클리셰 덩어리인 건 맞아서, '굳이 이 타이밍에 이런 전개를?' 싶은 부분도 있었다. 너무 철저히 따라갔어.
그리고 주된 사건 포인트인 가게 폐업 건과 금간 둑 건도 좀 약간 얼렁뚱땅 넘어가는 식으로 전개가 되어서 다소 어거지스러운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상술했듯 불 원소 자체가 아시안 및 한국계에 대한 묘사가 강해서 다른 문화권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로 북미 성적이 애매한 것도 이런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고.
....라기보다는 그냥 픽사가 전작들 극장 성적을 조진 것도 모자라 이번 작품 마케팅도 애매하게 해버리는 바람에.... 뭐 자업자득이지.
+추가
북미 쪽 극장 성적도 상승세로, [엔칸토]의 성적도 뛰어넘어 [겨울왕국 2] 이후 최고 성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입소문을 타 역주행을 했는데 북미도 그러한가 보다. 잘 된 일이구만.
어쨌든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와 더불어, 지금 가장 '극장 가서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티켓값도 애매했던 상반기 영화들은 잊어도 된다. 여기 '진짜 영화'들이 드디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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