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를 봤습니다.

2023. 2. 18. 15:26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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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10점 만점에 6.5점 줄 수 있겠다.

페이즈 5의 첫 영화이자, 멀티버스 사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영화인 걸 생각하면 다소 낮은 점수이긴 하나, 이게 사실인 걸 뭐 어떡하나.
그렇다고 '욕을 참을 수 없는 쓰레기 똥망작' 소리를 들을 영화는 결코 아니다. 분명하게 잘 한 부분도 있거든.
다만 무릎을 칠 정도로 감탄할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게 제일 핵심적인 문제이다.
점차 평가가 낮아지고 있는 MCU이고, 이 상황을 타개할 '한 방'이 슬슬 필요한 타이밍인데,
그 '한 방'이 이 영화에 없다.
'그래, 이 맛에 마블 영화 보지'할 만한, '재밌네? 옛날처럼 마블 시리즈에 관심 좀 가져 볼까?'할 만한, 그런 장면 그런 매력이 부재한다. 그게 제일 큰 문제다.




자세하게 풀어보자.
일단 장점부터 얘기하자면, 비주얼적인 부분에선 흠잡을 구석이 없다. 최근 몇몇 마블 작품들(특히 드라마)가 여러 이유로 다소 질이 낮은 CG 퀄리티를 보여주는 일이 잦았는데, 본작은 그런 구석을 찾아볼 수 없고, 신비롭고 매력적인 장면들로 영화 내내 눈을 즐겁게 한다. 마치 외계 행성에 불시착한 것 같은 알록달록한 배경과 기괴한 생명체 등, '우리 세계가 아니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준다.
그리고 단순히 보기만 좋은 게 아니고 액션씬도 제법 괜찮았다. 직전 마블 작품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자이언트맨이 캉의 도시를 개박살내는 장면은 상당히 시원시원하고 좋았다. 이전 앤트맨 시리즈들처럼 일상생활 속 사물들을 줄였다 늘였다 하는 그런 재치 있는 장면들은 없지만, 보여줄 건 다 보여주었다는 느낌.


정복자 캉의 포스는 대단했다.
그 위압감과 포스는 '아 이놈이 엄청 위험한 녀석이구나'하는 느낌을 충분히 주었고, 후반부 전투에서는 스캇 캐시 와스프의 앤트맨 패밀리를 3대 1로 상대하면서도 크게 밀리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캉을 단순한 악역으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필요악의 면모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쿠키영상과 연계해서 보면 더 그러한데, 작중의 캉은 여러 멀티버스의 캉을 통틀어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그 때문에 시공간의 법칙을 벗어난 양자 영역에 유배된 상태다. 본작의 캉이 퇴치되자 그제서야 다른 차원의 캉들이 규합하여 활동을 개시할 정도로. 즉 이 캉의 존재가 다른 캉들의 움직임을 억제하는 억제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앤트맨 일행이 트롤링을 한 것처럼 들릴 수 있는데, 본작의 캉 역시 타임 체어만 수리하면 다시 온 차원을 돌아다니며 정복하며 학살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사악하고 위험한 녀석이다. 거대한 위협이 지금 닥치냐 나중에 닥치냐의 차이일 뿐이지 앤트맨 일행이 캉을 막아야 했던 건 당연한 일이다.


앤트맨 시리즈의 주제 중 하나였던 '가족애'는 본작에서도 잘 살아있다.
특히 캐시를 사랑하는 스캇의 마음은 영화 내내 스캇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수많은 가능성들의 스캇이, '캐시를 위하여'라는 일념 하나로 뜻을 모아 코어에 다다르도록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이번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할 만큼 감동적이었다. '양자 영역'과 '개미'와 '히어로'의 세 가지 요소를 한 번에 응집시키면서 '사랑'까지 매력적으로 보여준, 무척 영리하고 멋있는 씬이었다.




이제 단점의 시간.
가장 큰 문제는 '말을 제대로 안 한다'이다. '이젠 다 잊고 싶었다'는 재닛의 말은, 30년동안 양자 영역 속에서 캉 일당과 씨름하면서 지칠 대로 지친 사람의 심정이라 이해는 간다. 다만 일이 이렇게 닥쳤는데도 설명을 통 하려 들지 않으니까 답답함이 든다. 그렇다고 설명을 아예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무슨 일인지 악당이 누군지 알아야지.
그래서 설명을 한다. 한꺼번에, 길게. 사연을 풀듯이.
이 과정이 상당히 설명충스럽게 진행되면서 지루함을 유발한다. 분명히 필요한 장면이었지만, 제대로 연출해내지 못한 것이다.
재닛만의 문제도 아니고, 캉에 대항하는 자유의 투사들도 구체적으로 캉이 그들을 어떻게 억압했는지, 어떻게 그들이 캉에게 대항해왔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까 후반부 캐시의 연설 장면이 그렇게까지 막 와닿지 않고 벅차오르지 않는다. 브로콜리 친구가 캐시의 연설을 듣고 뭔가 마음이 동한 듯이 캉의 병사들을 바라보는데, '쟤는 영화 초반에 슥 나온 게 전부인데 뭘 느낀 거지?' 하게 된다.


캉의 위압감은 잘 보여주었지만, 전투력 면에서는 아쉬움이 많다.
물론 캉의 가장 큰 능력은 멀티버스를 자유자재로 왔다갔다하는, 시공간 관련 능력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공간을 벗어난 양자 영역 속에서는 그 힘이 무지막지하게 너프를 먹은 것이 된다. 아마 양자 영역 바깥에서 싸웠더라면 앤트맨 일행은 손도 못 쓰고 캉에게 털렸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너프된 사양의 캉이다 보니 '멀티버스 사가의 최종 보스이자 타노스의 뒤를 이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강의 빌런'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저거 정말 위험한 놈이구나'라는 생각은 들어도, '와 저거 너무 센데 어떻게 이겨야 되는 거야?'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캉의 차후 포지션을 생각하면 이는 명백한 실패다.
물론 아직 캉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많다. 향후 [어벤져스 5: 캉 다이너스티]의 개봉 전까지 더욱 강력한 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첫 번째 쿠키 영상으로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무척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100퍼센트 실패한 게 아니기도 하고.
다만 첫인상이 되는 이 영화에서 뭔가 더욱 굉장한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은 꽤나 아쉽다. 분명히 잘 나온 매력적인 빌런이지만, 이것보다 더 엄청났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리고 이 영화 최악의 실책, 모독. 리얼 모독.
모독은 이건 뭐 낭비된 수준이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거의 없다.
기괴한 생김새와 다소 우스꽝스러운 역할 정도만 해냈지, 악당 간부로서의 강력함이나 깔끔한 캐릭터성은 뭐 없다시피하다. 쓰다 버린 게 아니라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버려졌다.
물론 원작 코믹스에서도 모독은 '강력하긴 하지만 특유의 생김새 때문에 개그 캐릭터로 쓰이는 빌런'의 포지션이긴 하지만, 본작의 모독은 그냥 모든 것이 애매한 놈이다.
특히 가장 별로였던 것은 그의 최후.
개심하는 계기도 작위적인데 그 뒤의 돌격과 화해 유언 모두 조잡하기 짝이 없다. 이 부분에서 이 영화에 대한 나의 평가가 와장창 깎여나갔다. 개인적으로 되게 싫어하는 전개 방식이라....
모독 나온다는 얘기 들었을 때도 '애가 좀 허접해보이는 느낌은 있어도, 중간 보스로 쓰이고 말 정도의 입지는 아닌데 좀 아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내 생각 이상으로 별로였다. 여기선 실망이 커요 페이턴 리드 감독.


캐시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시선이 제법 있었는데, 오히려 캐시 쪽은 문제가 별로 없었다.
교체된 배우인 캐서린 뉴턴도 아역 배우와 싱크로가 좋아서 잘 어울리고(다만 교체 과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빠 닮아서 정의감도 투철하다. 의붓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머리도 좋고. 다소 의욕이 과하긴 하지만, 그로 인해서 뭐 트롤링을 한다거나 하는 장면은 없다. 붙잡힌 히로인 역할을 수행하지도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캐릭터이다. 앤트맨 1, 2 때의 그 귀염둥이 애기를 생각하면, 참 애가 잘 컸다. 배우는 다르지만....




별개인데, 앤트맨 전작들의 소소한 느낌들은 아예 없더라. 우주적인 분위기와 신비 종족들, 대규모 전쟁 등 묘하게 [스타워즈]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또 아쉽긴 하다. 앤트맨 트릴로지인데 전작과의 연관성이 없이 전체 MCU 속 톱니바퀴 하나로 기능한다는 것이....

어쨌든 이번 영화로 페이즈 5의 포문이 열리게 되었다. 올해 개봉할 또다른 마블 영화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와 [더 마블스]인데, 과연 어떤 퀄리티의 작품들이 될 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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