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30. 19:14ㆍ본 영화
인생 첫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장고가 장고한테 장고 스펠링 가르쳐주는 영화.
잘 생각해보면 레귤러 캐릭터들 중에 진짜배기 선인은 한 명도 없는 영화.
흑인이 흑인에게 매우 찰진 발음으로 깜둥이라고 하는데 무지하게 자연스러운 영화.
남부에서 서부극 찍으면서 BGM으로는 R&B랑 힙합을 써먹는데 위화감이 하나도 없는 영화.
디카프리오는 나이를 먹든 수염을 기르든 잘생김을 숨길 수가 없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심지어 저기 포스터에서도 잘생김이 넘쳐흐르네요. 증말이지 완벽한 인간.
그리고 내 상상 이상으로 유혈이 낭자했던 영화.
모 영화 리뷰어가 이런 대사를 친 적이 있다.
"피 철철 총 탕탕 개소리 멍멍 하는 건 쿠엔틴 타란티노가 짱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건데,
개소리 멍멍은 모르겠고, 피랑 총은 확실히 이 양반이 짱인 거 같다. 사람한테 총 쏘는데 내용물 꽉 찬 2L 들이 페트병 옆구리 터져서 주스 분수 터지는 것마냥 피가 뿜어져 나오는 이놈이 처음이다...
물론 이런 유혈이 낭자한 류의 영화를 내가 거의 안 봐서 그럴 수도 있겠는데, 하여간 나한테는 신선한 느낌이었다. 저택에서의 총난사 장면은 특히 엄청났다... 빨간색으로 리모델링을 하려는 필사의 의지를 느낀 것만도 같았고.
이 영화의 제목을 최초로 들은 건 아마도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일거다. 그 책에서 이 영화를 비판했던 기억이 있는데, 사실 3년 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 까먹어서 비판의 요지가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다시 읽어봐야지)
그러고 위의 그 영화 리뷰어가, 실로 오래간만에 개소리를 최대한 자제하고 신명나게 (속된 표현을 쓰자면)빨아제끼길래, 흥미가 동해서 넷플릭스를 클릭한 것.
감상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는 있었는데 나한텐 좀 부담스러웠다"
비위가 좋지 않아서 피 나오는 영화는 최대한 피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그 대척점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 피의 축제를 벌이는 영화였어서...
근데 그래도 [블랙 스완] 볼 때보다는 멘탈이 덜 박살났는데
[블랙 스완]은 러닝타임 동안 미량의 독극물을 살살살살 푸는 느낌이라면
[장고]는 죽지 않을 정도로 몸에 나쁜, 근데 맛은 그냥저냥 괜찮은 식료품 같은 느낌이라서다.
일단 재밌었다. 시작부터 노예주를 총질로 날려버리더니, 영화 끝날 때까지 총을 놓지를 않는다. 쏘고 쏘고 또 쏘는데 장총으로도 쏘고 권총으로도 쏘고 산탄총으로도 쏘고 저격을 하기도 하고 소매 속에 숨겨놓은 미니건으로도 쏜다. 따라서 이 영화 속 사망자의 9할은 총 때문에 죽는다. 총으로 식사를 차린다면 족히 이 영화는 9첩 반상 감이다. 그정도로 쏴갈겨댄다.
그리고 그렇게 죽는 녀석들의 9할은 악당들이다. 현상금이 걸려있는 범죄자, 노예를 부리는 사람들, 혹은 그 앞잡이들 기타 등등. 따라서 악을 단죄한다는 정의구현과, 그것을 철혈 난사로 해낸다는 점에서 간단하고 자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좀 많이 자극적이긴 한데...
그리고 이 난투극 속을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뛰어다닌다. 그 캐릭터들을 배우들이 훌륭하게 연기해냈음은 물론이고.
전직 치과의사, 현직 현상금 사냥꾼인 슐츠 1세. 독일인. 배우는 크리스토프 발츠.
레귤러 캐릭터 중에는 흑인들을 제외하면 노예제에 부정적인 유일한 사람. 노예제와 노예를 부리는 사람들을 극도로 경멸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주인공을 구해주었지만, 그래서 막판에 주인공을 다시 위기에 빠뜨렸고, 본인도 죽는다. 차별로 이루어진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고결했던 양반. 다만 본인이 말하듯 "시체 팔아서 돈 버는" 현상금 사냥꾼이라, 완전한 선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신경쓰지 않는 모습도 어느 정도 보이고.
D가 묵음인 장고. 배우는 제이미 폭스.
이 스틸컷은 꽤 멀쩡하게 나왔는데, 실제로는 옷을 더럽게 못 입는다. 영화 보면서 한 번 경악했고... 막판에도 복수를 위해 캔디의 옷을 지가 입었는데, 솔직히 안 어울렸다...
영화의 주인공. 복수의 화신. 희대의 건슬링거. 작중에서 제일 총을 멋지게 쏜다. 휘릭 뽑아 탕 쏘고 휘릭 집어넣는데 엄청 멋지더라.
보통 창작물 속 복수자들은 꼭 한 번씩 이성을 잃고 날뛸 때가 있는데, 여기에선 마지막까지 꽤나 침착하고 지능적이었다. 본인이 화를 불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게 특이 포인트.
총알만이 오가는 영화 속에서 본인만 두어 번 정도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주었는데, 두 장면 모두 재밌었다. 특히 마지막, 저택에다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곤 씩 웃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
무슈 캔디. 잘 보면 이빨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다. 배우는 다들 아시죠?
내가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를 본 게, [타이타닉]하고 [인셉션]인데, 한 번은 세계 제일의 꽃미남이었고, 한 번은 나름 유능한 스파이였다. 그리고 여기서는 악덕 농장주.
실제로 주인공 측을 협박할 때의 연기는 실로 살벌했다. 상처나서 난 피를 천연덕스럽게 브룸힐다에게 문지를 때는 나도 소름이 돋았을 정도. 악당 디카프리오를 이번에 처음 봤는데, 굉장히 잘 어울렸고, 잘 연기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렇게 악독한 인간이긴 하지만 머리는 별로 좋지 않다. 정확히는 허세가 많은 편. 마지막의 악수 역시 어느 정도의 허세가 포함된 제안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깜둥이가 깜둥이에게, 스티븐. 배우는 닉 퓨리.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무엘 잭슨과는 다른 억양으로 연기를 한다. 영어를 잘 모르는데, 영화 배경이 미시시피니까 아마 그쪽 사투리겠거니 생각한다.
한국으로 치면 조선인인데 일본인 편에 서서 조선인을 조센징이라 부르며 잡고 다니는 그런 반동분자 캐릭터 되시겠다. 실제로 장고는 스티븐에게 "넌 겉만 까맣잖아."라고 하기도 했고.
장고가 저택에 들어올 때도, "어떻게 깜둥이를 저택에 들이나요?"라면서 항의하기도 했다. 거울을 안 보고 사는 건지. 근데 재밌는 건 캔디는 그에게 "너도 까맣잖아"라는 식으로 태클을 걸지 않았다는 것. 정말로 저택의 사람들은 스티븐을 겉만 까만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듯...
별개로, 캔디보다 오래 살아남으면서 이 영화의 최종 보스로 등극하기도 한 캐릭터. 등장 분량은 길지 않지만 실로 표독스런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위 스틸컷에서도 보이듯, 흑백이 분리된 시대의 영화에서 흑백이 섞이며 내뿜는 카리스마가 매우 인상깊다. 닉 퓨리로만 알고 있던 사무엘 잭슨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캐릭터.
총평. 자극적인 거 좋아하면 적당히 볼만합니다. 자극적인 거 기피하는 저도 나름 괜찮게 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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