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2. 19:18ㆍ본 영화
그러고 보면 극장에서 한국 영화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블로그에 리뷰한 지도 한참 전이고....
여튼, 근래 본 한국 영화 중에서도 아주 뛰어난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컬트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가야 하고(뭐 공급이 없기도 하지만). 공포는 쥐약이지만 오컬트는 좋아하는 나인데, 항상 장재현 감독님께는 감사할 따름이다 참.
특히 좋았던 것은, 장재현 감독의 전작들인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에서, 한국 무속인들이 거의 약간 전투력 측정기처럼 나왔었는데, 이번에는 상당한 활약을 펼쳤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동양 샤머니즘과 한국 무속을 소재로 삼은 영화에서 이런 활약을 해주니까 더 좋았달까?
그 중에서도 김고은이 굿하는 장면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정말 '신들린 듯한'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진짜 김고은 무당 연기만으로도 표값은 한다고 본다. 이도현과 합을 맞춰서 하는 장면들도 좋았고, 후반부에 동료 무당들과 함께 벌이는 악귀와의 신경전은 티키타카가 장난 아니었다.
외에도 비주얼적인 부분들이나 상황에 대한 몰입, 설정 등등 과연 오컬트 장인 장재현의 작품이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디테일들이 잘 살아있다. 미술팀도 진짜 고생 많이 한 게 느껴진다.
캐릭터들도 다들 잘 만들어졌다.
과학자 딸을 둔 풍수사 최민식, 컨버스 운동화 신고 굿하는 김고은, 풍수사와 행동을 함께 하는 교회 장로님 유해진, 김고은을 지극히 모시는 동료 무당 이도현 등, 확실하게 개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특히 '세련된 현대의 무당'이라는 캐릭터를 잘 뽑아냈다. 무당이라고 다 한복 입고 한옥에 지내고 그러는 게 아니라, 헬스도 다니고 양복 입고 교촌도 뜯고 하는 등 현대를 살아가는 무속인들의 모습을 보여준 게 좋은 포인트였다. 그래서 수시로 나오는 굿 장면들도 굉장히 트렌디하게 느껴졌다. 상상이 가는가 '트렌디한 굿판'이. 근데 그런 느낌이 든다 진짜.
전체적으로 숨을 쉴 틈을 안 주고 몰아붙인다.
살짝 힘을 푸는 구간은 존재하는데, 그러면서도 '얼추 좀 정리됐나?' 싶은 느낌은 주지 않는다. 적절한 긴장감을 계속 유지시키는 그 분위기가 좋았다. 강약을 조절하는 게 영리했다. 그러면서 공포영화 클리셰 중 하나인 '하지 말라는 거 굳이 해서 셀프로 화 불러들이기'도 나오고.... 주변에 관객들 그 장면에서 다 탄식하더라 ㅋㅋㅋㅋ.
한편 영화 보기 전에 평론가 한줄평을 먼저 읽었는데, 호평이 우세한 것을 보고 안심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영화 내용을 유추할 수 있기도 했다. 스포라서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겠지만, 역시 한국 현대 오컬트물이라면 써먹기 좋은 '그 소재' 아니겠는가. <퇴마록>에서도 아마 혼세편이었나, 한 번 써먹었었는데.
그래서인지 이 소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후반부는 다소 장르 변경이 된 듯한 느낌도 든다. 큰 틀은 유지하고 세부 장르가 갈아끼워진 느낌? 이 부분이 아마 호불호가 제법 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잘 안 하는 시도를 했네'라는 생각도 들어서 썩 나쁘진 않았다. 당황은 했다만.
다만 동시에 '이거 일본에서 개봉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뭐 [각시탈]도 재미지게 보는 친구들이니 별 문제 없을 거 같기도 한데 ㅋㅋㅋㅋ
위 얘기를 연장하자면, 이게 전반부 후반부가 좀 많이 다르다. 영화 자체적으로는 6챕터로 구분을 하고 있는데, 솔직히 1~3이랑 4~6 묶어서 1부 2부로 구분해도 무리는 없다. 장 표시 계속 뜨니까 몰입 좀 깨지기도 하고.
여튼 근데 1부랑 2부랑 연결점이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1부에서 약간 후일담 추가하고 영화 끊어도 무리 없을 정도다. 허리 부분의 연결력이 빈약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 그래서 후반부의 장르 변경이 좀 더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전술한, 스포가 되는 '그 소재'는 1~3챕터 보면서 '아 그거겠구나'하고 눈치채기 굉장히 힘들다. 떡밥을 차근차근 풀어내는 게 아니라, 뒤에 가서 뭉텅이로 풀어낸달까? 되게 중요한 부분인데 말야.
그리고 그렇게 달라지는 후반부는.... 내가 만족한 거랑은 별개로 아마 정말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이다. 전반부랑 많이 다르거든.
잘 사용하지 않는 소재를, 한국무속과 풍수지리랑 재미있게 엮어서 써먹었다는 장점도 있지만, 이질감 있는 장르 변경과 더불어 최종보스가 대놓고 정체를 드러내는 때문에 공포감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가설 및 픽션임을 강조하곤 있지만 다소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기도 하고 말이다. 다만 이 부분은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주 국뽕으로 밀어붙이지도 않고, 그냥 적당히 사용했다는 느낌? 어쨌든 뇌절은 없으니까.
정리하자면, 오싹하고 예술적이고 트렌디하고, 의외로 애국적인 영화이다. 오매불망 기다려온 그 기대, 그리고 최근 티켓값의 값어치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멋있는 작품이다. 정말 당신이 진정으로 한국 오컬트의 제왕이십니다, 장재현 감독님. 오래오래 활동하시면서 계속 재밌는 작품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특별 출연하신 코야마 리키야님 반가웠습니다. 어쩐지 많이 들어본 목소리더라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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