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을 봤습니다.

2023. 12. 8. 21:57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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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봉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티모시 샬라메 나오는 영화를 본 건 이번이 3번째다. 참 소처럼 일하는 양반인데, 나는 잘 안 봐왔단 말이지.
그 외에도 타노스, 아쿠아맨, 일사 파우스트, 문나이트, MJ, 안톤 쉬거, 드랙스, 첸진 등 명품 배우들이 총집합해 작품을 빛내주었다. 배우 보는 맛도 쏠쏠한 즐거움을 주었다.
 
 
 

영화는 한 마디로 '장엄하다'. 최근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이 표현이 잘 어울리는 단어다. 역사 깊은 SF 대서사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답게, 빛깔과 깊이가 아주 남다르다.
마치 정말 그 행성에 온 것같은 디테일한 환경과 표현은 감독이 얼마나 이 작품에 공을 들였는지 생생히 느껴질 정도였으며, OST는 그 노력에 완벽하고 훌륭한 조미료가 되어준다. 한스 짐머가 자신의 리미터를 스스로 해제하고 완전 각성 폭주하여 뽑아낸 황홀한 OST는 듣다보면 마치 에밀레 에밀레 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준다. 괜히 오스카를 탄 것이 아니며, 만일 오스카보다 상위의 시상식이 있다면 역시 따놓은 당상이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또 오래된 옛 장편 소설의 장대한 세계관을 다루면서도, 감독의 설명이 굉장히 디테일하고 친절하다. 덕분에 원작 소설을 아예 보지 않은 나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무리가 전혀 없었다. 고유명사를 정말 남발하면서도 이 정도 설명력과 이해력이라니, 감독이 어미새의 마음으로 꼭꼭 씹어서 관객에게 먹여주는 것이 잘 느껴졌다.
 
 
 

본작은 'SF 우주 판타지 대서사시'이지만, 일반적인 SF 혹은 스페이스 오페라와는 다르게, 철저히 냉병기로 싸움이 이루어진다. 흔히 나오는 레이저 건이라던가, 우주선 전투라던가, 초고속비행 뭐 그런 건 아예 나오지 않는다. 날붙이와 화약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이 점에서 흔한 SF와 차별화되는 매력을 얻었다.
다만 그러다보니까 다른 작품들보다 비주얼적으로 보는 맛은 살짝 부족하다. 또 이 작품이 액션보다는 정치 싸움 및 가문 간 갈등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까, '우주 활극'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실망을 안겨줄 것이다. 
 
 
 

주인공 폴에게 닥친 갈등과 위기의 요소는 대충 2가지인데, 아트레이데스와 하코넨+제국 연합 간의 정치적인 싸움에 의해 습격을 당해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 한 가지고, 다른 하나는 그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것이다. 우주 정부의 뒷세계에서 암약하는 베네 게세리트에 의해 뜻하지 않게 '퀴사츠 헤더락'으로서의 운명을 타고나게 된 것이다.
'퀴사츠 헤더락'이 뭐냐면, 대충 [매트릭스]의 네오, [스타워즈]의 아나킨처럼 그 세계관의 메시아 비슷한 것이다. 다만 [듄]의 퀴사츠 헤더락은 다른 작품들 속 메시아 캐릭터와는 다르게, 베네 게세리트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게다가 미래예지를 통해 메시아인 자신의 미래를 내다본 폴은 그것이 결고 희극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하코넨에게 복수하고 메시아의 운명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나서기로 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정치 구조, 신의 구조, 세계관 설정 등에서 묘하게 중세 스멜이 나는 것도 특징이다. 우주 중세라니 이 얼마나 근사한 소재냐. 근데 이 매력적인 소재가 무려 1965년에 사용되었다고요?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프랭크 허버트....
 
 
 

여하튼 문자 그대로 '장엄한' 세계관, 배우들의 멋들어진 연기, 디테일하고 깔끔한 비주얼, 짐아일체의 OST, SF에 빠져선 안되는 인간적 고찰까지, 정말 정석 SF의 맛을 한껏 잘 보여주는 훌륭하고 거대한 대서사시이다.
 
다만, 아주 큰 단점이 있다. 두 가지나 있다.
 
첫째, 길다. 요즘같은 시대에 2시간 35분씩이나 하는 영화는 정말 투머치다 투머치. 영화관 의자에 앉아서 몇 번을 몸을 꿈틀거렸는지 모르겠다.
둘째, 졸리다. 내용이 지루하다는 얘기는 아닌데, 자극적인 분위기도 아니고, 전투씬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뭔가 비주얼적으로 빵빵 터지는 것도 아니고, 전투도 냉병기 위주다. 군대끼리 대규모로 맞붙는 것도 아니고 야밤에 기습하는 데다가 좁은 공간에서 몇몇 추격병과 대치하는 정도라, 내용 및 비주얼이 전반적으로 굉장히 싱겁다. 절체절명의 위기도 없고 드라마틱한 뒤집기도 없다. 공간도 대부분 어두운 실내 아니면 노오란 사막뿐이다. 게다가 배경음악도 그에 맞춰서 약간 잔잔한 편이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기 보다는 장엄함을 최대한 표현하는 데에 집중했다. 한마디로, 졸림을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춰진 상태이다. 내가 어지간해선 극장에서 안 조는데, 이건 내용이 재밌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졸렸다.
....적고 보니 진짜 이상한 영화다. 재밌는데 졸린 영화라니. 근데 놀랍게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듄 파트 2]가 개봉한다면 보러 갈 의향이 있다. 일단 영화의 때깔과 OST만으로도 티켓값은 하고도 남고(아이맥스가 힘들면 돌비 애트모스로라도 보는 것이 낫다. 사운드가 진짜 좋다), 1편의 엔딩이 전형적인 '우리들의 여정은 지금부터다' 엔딩이라, 뒷이야기가 상당히 궁금하다. 기승전결에서 기 후반~승 초반 부분에서 끊긴 느낌이라, 묘하게 열이 받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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