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를 봤습니다.

제임스 건 감독 최고의 역작. MCU 심폐소생 성공. 가장 완벽한 마무리.
등등, 온갖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랄 정도의 수작이다. [노웨이홈] 이후 최고 완성도를 지닌, 그야말로 마블의 구원투수.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하나도 난잡하지 않다.
로켓을 중심 줄기로 꽉 잡고 스무스하게 전진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얽어나간다.
특히 본작은 철저하게 가오갤에 포커스가 맞춰진 만큼, 가오갤이나 어벤져스 시리즈 외의 다른 마블 시리즈를 전혀 볼 필요가 없다. 복잡한 멀티버스도 잠깐 안녕이다. 최근 마블 영화 중에서 이 정도로 진입 장벽이 낮았던 건 [샹치] 정도다.
이 '낮은 진입장벽+이해가 쉬운 스토리 전개'의 장점이 좋은 시너지를 일으켜, 영화의 내용이 한 눈에 들어온다.

로켓의 과거 이야기는 그야말로 비극 그 자체다.
MCU 역사상 가장 잔혹한 연출을 보여준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만행, 친구들과의 행복했던 시간이 가장 참혹하게 끝나버린 총격, 브래들리 쿠퍼의 처절한 절규 등등, 관객들의 마음을 깊숙이 찌르는 슬픈 시간이었다. 특히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가슴 아플 그런.
그리고 짧고 반가운 재회의 시간에 라일라가 로켓에게 했던 한 마디. "이 이야기는 언제나 너의 이야기였어. 단지 네가 몰랐을 뿐이지".
주인을 하늘로 받들었다가 버려진 반려동물에게 하는 이야기같기도, 보이지 않는 틀에 갇혀 있는 우리들에게 하는 이야기같기도 한 이 대사는 보는 이의 가슴을 관통한다.

로켓과 친구들을 그렇게 갈궈댔던 메인 빌런 하이 에볼루셔너리.
배우 추쿠디 이우지의 광기 어린 연기력에 힘입어, MCU 빌런 역사상 가장 잔혹한 짓거리들을 보여준다.
신을 비판하지만 신 행세를 하는, 우생학에 찌들어 인간과 동물을 대상으로 끔찍한 실험을 자행하는 모습은 꽤나 현실에 있을 법한 미치광이의 행동들이었다.
실제로 수많은 종족과 행성들을 창조해낸 창조주로서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고, 로켓의 지능이 자기보다 높다는 걸 알자 드러내는 그 경멸과 질투는 실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특히 배우의 발성이 엄청 쩌렁쩌렁해서 그게 더욱 돋보였다. 진짜 캐스팅 잘 했음.
다만 이러한 천재성과 위압감에 비해서, 개인의 전투력은 슈트에서 나오는 여러 능력에 의존하는 정도고, 그냥 조금 강한 일반인 정도다. 싸움 실력으로 가오갤을 위협하는 장면은 보여주지 못했고, 심지어 후반에 가면 슈트에 고장이 난 상태로 가오갤 전원에게 집단구타를 맞고 털린다. 때문에 다소 후반에 포스가 깎인 편.
그렇다고 못 만든 빌런이란 건 아니고, 비슷한 단점을 공유하는 캉과 비교하면 이쪽의 완성도가 압도적이다. 포스 면에서도 캉이 이 정도로만 했으면 [앤트맨3]가 덜 비판받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CG나 액션신도 근래 점점 퇴화하는 MCU답지 않게 뛰어나다.
특히 후반부에 하이 에볼루셔너리 우주선 안에서 벌어지는 7인 단체 액션씬은, 가오갤 멤버 각각의 전투 스타일을 잘 살리면서 화려한 카메라 워킹을 통해 눈을 즐겁게 했으며, 팀워크가 딱딱 맞는 모습도 보여주면서 개인의 전투 기량과 팀으로써의 호흡 모두를 잘 보여주었다.

다소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요 아담 워록이라는 친구다.
초반부에 강렬하게 등장하여 가오갤 모두를 압도하는 파워를 보여주었고, 로켓을 중태에 빠뜨려 사실상 본작 스토리의 시발점이 된 나름 중요한 캐릭터이긴 하다.
문제는 그 이후로 계속 겉돈다. 처음에만 등장하고 빠져도 될 정도로 메인 스토리에 좀체 녹아들지를 못한다. 사실 전작의 소버린도 제3세력이긴 했지만, 본작에서 이 친구는 유독 눈에 띄게 어색한 포지션이다 보니.... 주위 관객들도 얘 나올 때마다 실소가 나오더라.
그래도 '원래보다 일찍 고치를 깨고 나온 바람에 힘만 셀 뿐 정신적으론 미성숙하'라는 설정이 있어서 행동이 이해는 가고, 그에게 기회를 주었던 덕에 나름의 갱생을 하여 가오갤 멤버로 합류했으니, 차후 작품들을 통해 개인 서사를 쌓아가면 되겠지. 배우의 연기력은 좋으니까.

디즈니 플러스에서 제공하는 마블 스페셜 프레젠테이션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페셜 홀리데이]와 내용이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과거 콜렉터의 영역이었던 노웨어를 가오갤이 매입하여 본부로 사용하는 점이라던가, 신규 캐릭터인 코스모의 등장이라던가, 맨티스 또한 에고의 자식이어서 스타로드와는 이복남매가 된다는 점 등.
근데 굳이 볼 필요는 없고(재밌긴 하다), 그냥 상기한 점들만 알아가도 충분하다. 특히 코스모는 여러모로 씬스틸러의 역할을 잘 해냈고, 최종 국면에서도 큰 활약을 해서 매력을 느꼈다.

아무튼 이것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는 몸통까지 완벽한 용두용미로써 완결을 맺게 되었다.
근래 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들 중에서, 가장 찜찜함 없이 깔끔하게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뭐 이건 마블이 감이 살아났다기보다는 그냥 제임스 건이 잘 한 거라고 봐야 하겠지만....
여하튼 최근 마블 작품들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먹힐 만한 명작이고,
솔직히 이 정도면 마블 전성기 시절에 나왔어도 추앙받았을 급이라고 본다. 당장 다들 극장으로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