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영화

[무간도]를 봤습니다.

표류선 2021. 8. 1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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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저씨들이 홍콩 느와르에 환장하는지 알겠다....

 

하여튼, 살면서 처음으로 홍콩 영화를 보았다. 학교 수업 시간에서 중국 영화는 몇 번 틀어줘서 본 기억이 있는데, 희한하게 홍콩 영화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한테는 이게 홍콩 영화의 첫인상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왠지 대단히 눈이 높아진 기분이다. 다른 영화들도 이 정돈가?

 

느와르를 잘 보지는 않는다. 뭐 느와르라는 장르의 뚜렷한 정의가 없긴 하지만.... 살면서 본 느와르 작품 중에 재밌었던 걸 고르라면 [신세계]나 [91Days}, [부당거래] 정도? 웹툰 [부활남]도 느와르라고 치면 칠 수 있겠다.

특히 [신세계]를 재밌게 봤는데, 본 직후 이런저런 평가들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것이, [무간도]를 많이 의식하고 있는 영화라는 평가였다. 그때는 [무간도]를 안 봤어서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

그리고, [무간도]가 압도적으로 더 위대하다.

 

엄밀히 따지면, [신세계]랑 [무간도]는 차이점도 많다. 일단 [무간도]는 경찰과 갱 모두 언더커버를 사용하는데, [신세계]는 딱히 갱(조폭) 쪽에서 손 쓴 건 없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추격하는 쫀득함도 없다. 그리고 [무간도]는 경찰의 스파이인 진영인(양조위)이 패배하지만, [신세계]는 반대로 이자성(이정재)가 최후의 승자다. 이런 식으로 디테일의 차이들은 제법 존재한다. 뭐, 애초에 큰 차이점 없이 비슷하게 굴러가면 그게 그냥 카피캣이지....

그래도 닮아 있는 부분들도 많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이자성이 처한 상황이나 감정선은 진영인+유건명의 느낌이다. 보면서도 '아 이건 [신세계]에서 본 거랑 비슷하네'(정확히는 [신세계]가 이걸 오마주한 거지만) 하고 생각이 드는 장면들이 여럿 있어서, 나름 비교해서 보는 맛이 있었다.

 

 

 

 

 

만다린 진. 배우는 양조위. 이 스틸컷을 보고 [샹치]의 캐릭터 포스터를 보니, 정말 멋지게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하여튼, 사실상 이 영화 최고의 피해자다. 이자성은 언더커버로 들어가서 대기업 회장으로 출세라도 했지 이 양반은 10년 동안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 겨우 다시 경찰로 명예회복을 할라치니 별세해버렸다.... 뭐 마약 밀수 도와주는 걸로 돈을 얼마나 벌었겠나. 황국장에게 투덜대는 모습에서 정말 진심어린 짜증이 묻어나와서 보는 나도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로서의 정의감을 잃어버리지 않은 대단한 사람. 황국장이 좀 쪼긴 했어도 강과장마냥 사방으로 압박을 하지는 않았고, 인간적으로도 의지할 만 한 사람인 게 컸다고 본다. 특히 마지막에 유건명에게 총을 겨눌 때의 눈빛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정체성을 마지막까지 단단히 붙드려는 반짝임이 보이는 듯해서 정말 좋았다.

 

 

 

인생의 승리자 유건명. 배우는 유덕화.

한침은 사실상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었다. 뭐 객관적으로 봐도 삼합회 언더커버로 불안정한 외줄타기를 하느니, 현재도 충분히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경찰 쪽을 택하는 게 당연하긴 하다. TV 인터뷰도 예정되어 있다는 작중 상사의 발언을 보면 대중적으로 인지도도 있는 모양이고.

그래도 이 양반도 진영인만큼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 잘 보였다. 마지막에 임국평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탈 때 보여준 그 불안한 눈빛은 가히 예술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서 배우들의 눈빛 연기가 참 좋았었다. 믿음을 보일 때도, 흔들릴 때도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배우들의 눈빛은 늘 열연했다. 되짚을수록 계속 기억에 떠오른다.

동양인은 눈을 통해, 서양인은 입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전달받는다는 얘기를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이모티콘의 차이도 그런 문화 차이에서 온 것이라고도 했고. 이 영화를 보면 그게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시선만을 주고받는 장면에서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다 알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참 연기를 다들 잘해줬어.

 

 

 

또 하나. 이 영화 은근히 통수가 잦다.

관객들 뒤통수를 때리는 그런 종류의 반전은 없다. 애초에 주인공들 정체가 초반에 밝혀진 상태에서 시작을 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의리'가 없다. 경찰과 삼합회 사이의 의리를 찾는 것은 아니지만, 경찰들 안에서도 삼합회 안에서도 '의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느낌이다.

신의와 의리는 다르다고 본다. 뉘앙스의 차이라는 게 있지 않나. 특히 유건명의 모습에서 그런 걸 느꼈다. 진영인도 4~5년 가까이 한침을 알고 지냈지만 결코 진정으로 한침의 편이었던 적은 없었고. 황 국장도 진영인과 무척 가까운 사이이긴 했지만 한침을 잡기 위해서 끝까지 부려먹은 것도 그였다(초반부 대화를 보면 '이번 작전만 끝나면 경찰로 복귀시켜주겠다'는 말을 몇 번씩 했던 모양).

어떻게 보면 참 비열한 영화다. 느와르와 의리에 큰 상관관계는 없지만, 이 영화에 영향을 받은 [신세계]에서 나온 이자성과 정청의 그 끈끈함을 떠올리면.... 희한하다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정말 좋은 영화였다. 다른 홍콩 영화도 이런 정도라면 한 번 쭉 봐 보고 싶을 정도로. 느와르 특유의 긴장감과, 불신에서 피어나는 삭막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히 좋아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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